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회가 어떻게 변했을까? 서울부터 부산을 5시간 만에 자가용을 타고 갈 수 있다는 꿈을 어떤 선각자는 제시했을 것이다. 고속도로라는 것이 생기고 고속도로 휴게소도 생기고 시내 도로들도 생기면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인력거가 다니고, 말이 다녔다. 그리고 말이 다니던 길에 들어온 자동차는 한없이 어색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앞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말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사람을 칠 수도 있고,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던 사회에서는 정말 위험했다. 어차피 도로가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이동 속도는 마차보다 조금 빠른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를 금지하자라고도 했고, 규제하자라고도 했다. 그런데 해야 하는 일은 현실의 시스템에 맞는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일자리도 정말 많이 없어졌을 것이다. 마굿간도, 말 몰던 사람도, 말 키우던 사람도, 인력거도, 인력거꾼에게 시원한 물을 제공하던 사람도, 여러 인력거를 운영하던 회사도, 도로에서 말똥 치우던 사람도 다들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하는 사람 등의 일자리가 생겼겠지만 이전에 비하면 훨씬 일자리가 줄어 있었다. 차 한 대를 관리하는데 드는 인력이랑 마차 한 대를 관리하는데 드는 인력은 상당히 다를 테니까.
그러나 곧 스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에서 부산 갔다 오는 것이 하루 만에 가능해졌고, 중간에 고속도로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다. 주유소, 자동차 공장, 타이어 회사, 자동차 보험, 렌터카 사업, 대리운전, 택시, 버스 회사, 물류 운송업까지. 그냥 다른 시스템이 탄생했고, 그 시너지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변화들이 일어났다. 교외 지역이 개발되고, 대형 쇼핑몰이 생기고, 드라이브 스루 문화가 탄생했다. 도시의 형태 자체가 바뀌었고,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10배 이상 넓어졌다. 관광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국경을 넘는 무역이 활발해졌다.
모두가 창작자가 되다
조만간 AI 에이전트가 완전히 일상화될 것이다. "쿠팡이츠에서 김밥 주문해줘", "내 예산 관리 좀 해줘" 같은 간단한 명령어로 AI가 컴퓨터를 직접 조작하는 시대가 온다. 구글, Anthropic, OpenAI는 이미 자율 코딩 에이전트를 출시했고,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사람들은 이전에 비용 때문에 엄두도 못 내던 일들을 시작할 것이다. 이전에는 개발자 7명, 디자이너 1명, PM 1명, 행정 직원 1명을 고용하면 연 10억원이 들었다.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AI가 몇십만원이면 가능하다. 회사들은 필요한 도구를 외주 주는 대신 직접 만들어 쓸 것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동화책을 만들 것이다. 한 아이가 자신이 주인공인 모험 이야기를 매주 한 편씩 만드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 될 것이다.
그중 인기 있는 작품들은 실제 책으로 출판될 것이다. 17살 고등학생이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14살 중학생의 동화가 전 세계적으로 번역 출간될 것이다. 10대, 20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할 것이다. 글솜씨보다는 그 세대만이 포착할 수 있는 감성과 주제의식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코딩을 전혀 모르던 중소기업 사장이 AI와 대화하며 ERP 시스템을 직접 만들고, 동네 빵집 사장은 자기 가게만을 위한 주문 앱을 만들 것이다. 한 사람이 1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를 200달러에 완성하는 일이 일상이 될 것이다.
아주 적은 수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고, 아주 적은 수의 사용자를 위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보편화될 것이다. 할머니를 위한 맞춤형 건강 관리 앱, 동네 축구 동호회만을 위한 일정 관리 시스템, 친구 5명만 보는 웹툰. 유튜브가 소수의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가능하게 했듯이, 새로운 플랫폼들은 소프트웨어와 동화, 소설, 만화, 음악 창작을 모두의 일로 만들 것이다.
이는 점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AI를 쓰지 않는 회사는 경쟁에서 밀리기 쉽고, AI를 다루는 능력은 점점 중요한 자격이 되고 있다. 동시에 AI 활용은 스마트폰 쓰는 것만큼 보편화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쓸 줄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쓰는가"가 될 것이다.
모두가 디렉터가 될 것이다. 코딩을 몰라도 앱을 만들고, 그림을 못 그려도 일러스트를 만들고, 악기를 못 다뤄도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게 되면서, 진짜 차별화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만들 것인가, 누구를 위해 만들 것인가를 정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2017년 1인 방송이 민주화되었을 때와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유튜브에 뛰어들었지만 극소수만 성공했다. 앱 시장도 그럴 것이다. 수많은 앱이 쏟아지지만 대부분 사용자 없이 버려질 것이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뜻이다.
얕고 넓은 지식의 시대
흥미로운 역설이 일어날 것이다. AI가 발전할수록, 깊은 전문성보다 넓은 기초 지식이 더 중요해진다.
코딩을 10년 배운 전문 개발자와 코딩을 2주 배운 초보자의 차이가 AI 시대에는 극적으로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어떤 앱을 만들지 아는가'이지 '어떻게 코드를 짜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은 훨씬 더 얕고 넓게 가르쳐야 한다. 엔지니어링, 디자인, 의학, 법학, 경영학의 기초만 알아도 AI에게 물어보며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아예 모르면 물어볼 수도 없다.
미래의 교육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한 과목을 1년 내내 파는 대신, 다양한 분야를 짧게 맛보는 방식이 늘어날 것이다. 코딩, 디자인, 3D 모델링, 영상 제작, 음악 작곡, 생명공학, 경제학, 심리학, 법학까지. 각 분야의 기초만 알아도 AI가 나머지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다: 깊이가 아닌 넓이, 전문성이 아닌 호기심, 완벽함이 아닌 시도. 그리고 그 얕은 지식들을 연결하는 능력. AI는 깊이를 대체할 수 있지만, 연결의 통찰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초지능의 서막
코딩을 "직업"으로 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지금 수천 명의 개발자가 몇 년 걸리는 일을 AI가 며칠 만에 해내는 사례가 이미 나오고 있다. AI가 AI를 개선하는 재귀적 자기개선이 본격화되면,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슈퍼파워의 역설이 펼쳐진다. AI로 개인의 능력이 몇 배, 몇십 배 강해지지만, 동시에 누구나 그 도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모두가 같은 도구를 가지면 도구 자체의 희소성은 사라진다. 차별화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서 온다. AI를 활용해 큰 임팩트를 만드는 디렉터들, AI와 협업하며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 AI가 만든 것을 소비만 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우리는 축의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축의 시대란 기원전 800년에서 200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위대한 사상이 꽃핀 시기를 말한다.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중국에서 공자, 노자, 장자가, 인도에서 부처와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이, 중동에서 유대교 예언자들이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했다. 역사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를 인류 정신사의 축(Axis)이 되는 시대라고 불렀다.
새로운 축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안드레이 카파시 같은 선구자들은 "AI와 인간의 공동 진화론"을 제시하며 "우리는 AI를 만들고 있지만, AI가 우리를 재창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교육의 초점도 코딩 자체가 아니라 "AI와 함께 사유하는 법"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진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주말에 AI 사용을 자제하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퍼질 것이다.
동네마다 아날로그 공간이 생길 것이다. 종이책만 읽고, 손으로만 글을 쓰고, 진짜 사람끼리만 대화하는 곳이다. AI가 없는 공간이 오히려 프리미엄이 될 것이다. "100% 인간이 만든", "디지털 디톡스 존" 같은 간판이 도시 곳곳에 등장할 것이다.
가족의 의미도 바뀔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해주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효율성이 아닌 존재 자체가 될 것이다. 쓸데없는 대화, 비효율적인 만남, 시간 낭비 같은 산책이 가장 소중한 일상이 될 것이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올 것이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변화는 늘 예상보다 빠르고 예측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변화를 막으려는 사람들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