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사람이 직접 컴퓨터를 조작하던 시대를 넘어,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직접 소통하며 업무를 처리하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사람은 더 이상 "어떻게(How)"를 지시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What)" 원하는지만 말하면, AI 에이전트들이 알아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 실행한다.
이러한 변화는 인터넷 자체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가져올 것이다. 1990년대 웹이 등장했을 때, 정보가 종이에서 화면으로 옮겨갔다. 백과사전은 브리태니커 온라인이 되었고, 신문은 포털 뉴스가 되었다. 2000년대 모바일이 보편화되면서, 그 화면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아이폰 하나로 은행 업무를 보고, 택시를 부르고, 쇼핑을한다. 그리고 지금, 2020년대 후반에는 화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직접 조작하는 인터페이스 대신, AI 에이전트들이 배후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터페이스는 계속 단순해져왔다. 1980년대 MS-DOS는 명령어를 외워서 타이핑해야 했다. "cd \windows\system32"처럼 정확한 경로를 입력해야 폴더를 열 수 있었다. 1990년대 Windows는 아이콘을 더블클릭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2010년대 스마트폰은 손가락으로 터치하면 됐다. 그리고 2020년대 AI는 그냥 말로 하면 된다. "내일 회의 준비해줘." 이 한 마디면 AI가 알아서 회의실 예약, 참석자 초대, 자료 준비까지 처리한다.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 자체가 인터페이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선다. AI 에이전트들이 사람 없이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며 거래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당신의 개인 AI가 호텔 AI와 가격을 흥정하고, 항공사 AI와 좌석을 협상하고, 렌터카 AI와 스케줄을 조율한다. 사람은 최종 승인만 하면 된다. 마치 1950년대 대기업 CEO들이 비서를 두고 일했듯이, 2020년대 후반에는 누구나 AI 비서를 두고 일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이 비서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동시에 수백 가지 일을 처리하며,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지금인가? 2022년 11월 ChatGPT가 출시되기 전까지, AI는 좁은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도구였다. 이미지 인식 AI, 번역 AI, 음성 인식 AI... 각각은 뛰어났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LLM은 단순히 언어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여러 단계로 구성된 업무를 스스로 분해하고, 필요한 도구를 선택하고, 결과를 검증한다. 마치 인간 비서가 일하는 방식과 같다. 이 능력 덕분에 AI는 드디어 "에이전트"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사람이 각 앱을 직접 조작하던 시대(0단계)에서 AI 에이전트들이 자율적으로 협상하고 거래하는 시대(5단계)까지, 5단계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 각 단계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우리 일상과 비즈니스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진화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단계에서 2단계로, 2단계에서 3단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단계가 동시에 공존한다. 2025년 현재, 어떤 산업은 아직 0단계(순수 앱 중심)에 머물러 있고, 어떤 산업은 벌써 3단계(MCP 기반 에이전트)로 넘어가고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구형 택시는 0단계로 운영되지만, 우버와 리프트는 2단계 에이전트를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비동시성이 혼란을 만들지만, 동시에 기회도 만든다. 먼저 진화한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선점 효과"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0단계: 앱 중심 시대 (2010-2022)
전화/오프라인으로 하던 일을 스마트폰에서 어떻게 할까?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전화, 인터넷, 아이팟이 하나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만든 것은 앱 경제였다. 2008년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우리가 현실에서 하던 모든 일이 앱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택시 부르기, 음식 주문하기, 호텔 예약하기, 은행 업무 보기...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했다.
2018년 어느 날 오후, 당신은 부산 출장을 준비한다. 먼저 코레일 앱을 열어 KTX를 검색한다. 날짜, 시간, 출발역, 도착역을 입력하고 결제한다. 다음은 호텔이다. 야놀자 앱을 열어 부산 호텔을 검색한다. 또 날짜를 입력하고, 지역을 선택하고, 가격대를 필터링하고, 예약한다. 렌터카도 필요하다. 쏘카 앱을 연다. 또 같은 날짜와 장소를 입력한다. 세 개 앱에 똑같은 정보를 세 번 입력했다.
그런데 출장 날짜가 변경된다. 세 개 앱을 다시 열어 예약을 취소하거나 변경해야 한다. 각 앱마다 취소 규정이 다르고, 환불 방식도 다르다. 30분이 걸린다. 번거롭지만,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하던 과거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0단계의 사용자 경험이다.
앱 중심 시대의 핵심은 개별 최적화다. 우버는 택시 호출을 완벽하게 만들었고, 배달의민족은 음식 주문을 혁신했다. 각 앱은 자기 영역에서는 최고였다. 하지만 앱들은 서로 단절되어 있었다. 우버는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만, 그 정보를 호텔 앱과 공유하지 않는다. 모든 앱이 고립된 섬이었다.
평균적인 스마트폰 사용자는 80개의 앱을 설치하고, 매일 9개의 앱을 사용한다. 각 앱마다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 다른 인터페이스를 기억해야 한다. 2020년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이 문제가 폭발했다. Zoom, Slack, Asana, Google Docs... 하루에 15개 이상의 앱을 오가며 일하게 되었다. "앱 피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1단계: 대화형 AI 시대 (2022-2024)
컴퓨터에게 사람의 말로 말을 걸 수 있을까?
2022년 11월 30일, ChatGPT가 세상에 공개된다. 2개월 만에 1억 명을 돌파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왜일까? 처음으로 컴퓨터가 사람의 언어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2023년 초, 당신은 ChatGPT를 처음 사용한다. "부산 3박 4일 여행 계획 짜줘"라고 타이핑한다. 놀랍게도 AI가 답한다. 1일차는 해운대와 광안리, 2일차는 감천문화마을과 자갈치시장, 3일차는 태종대... 세부 일정까지 완벽하다. 구글 검색했다면 10개 블로그를 읽고 1시간 걸렸을 일이 30초 만에 끝났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그럼 이 계획대로 예약해줘." AI가 답한다: "죄송하지만 제가 직접 예약할 수는 없습니다. 코레일 앱에서 KTX를 예매하시고, 야놀자에서 호텔을 예약하세요." 결국 당신은 코레일 앱을 열고, 야놀자를 열고, 다시 수동 작업을 시작한다.
AI는 완벽한 비서 같았지만, 손이 없었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조언자일 뿐, 실행자는 아니었다.
ChatGPT와 Claude 같은 대화형 AI가 등장하며, 기존 앱들도 LLM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항공사 앱에 챗봇이 생기고, 호텔 앱도 자연어로 검색할 수 있게 된다. "해운대 근처 오션뷰 호텔"이라고 타이핑하면, 과거처럼 필터를 클릭할 필요 없이 AI가 바로 찾아준다. 인터페이스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앱과 LLM은 분리되어 있었다. 음식 주문할 때는 배달 앱을, 여행 계획은 ChatGPT를, 업무 정리는 Notion을 따로 사용한다. 각 도구는 뛰어났지만, 여전히 우리가 중간에서 모든 것을 조율해야 했다. 대화형 AI는 질문에 대답하고 글쓰기를 도와주지만, 실제로 우리 대신 예약이나 결제를 해주지는 못한다.
대화형 AI는 사람처럼 말을 잘 이해하고 답변도 잘하지만,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우버로 택시 불러줘"라고 말해도 "우버 앱을 열어서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라는 설명만 들을 뿐, AI가 직접 택시를 불러주지는 못한다. 기술자들은 이 문제를 "Grounding Problem"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하면, AI가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문제다. 아무리 똑똑해도 손과 발이 없으니 관념 속에서만 머물 뿐이다.
2023년 말부터 이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OpenAI는 GPT-4에 "Function Calling"(함수 호출) 기능을 추가했다. 이것은 AI가 다른 프로그램의 기능을 직접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 알려줘"라고 하면, ChatGPT가 기상청 데이터를 직접 가져온다. Google은 Bard를 Gmail, Google Maps와 연결했다. "어제 받은 이메일 요약해줘"라고 하면, Bard가 Gmail에 접속해서 이메일을 읽고 요약했다. 하지만 이것도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각 AI가 미리 연동해둔 서비스들만 이용할 수 있었고, 새로운 서비스는 개발사가 업데이트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런 한계 때문에 다음 단계로의 진화가 필연적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AI에서, 행동할 수 있는 AI로. 조언자에서 실행자로. 바로 AI 에이전트의 시대다.
2단계: 초기 AI 에이전트 시대 (2024-2025)
AI가 실행도 해줄 수 있을까?
AI가 드디어 우리를 대신해서 실제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KTX 예매해줘"라고 말하면, AI가 코레일 시스템에 직접 접속해서 기차표를 예약해준다. 혁명적인 변화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핵심 문제는 API 통합의 한계다. API는 프로그램들이 서로 대화하는 방식이다. 마치 레스토랑 주문서처럼 "어떤 기능을 어떻게 실행해달라"고 요청하는 양식이다. 문제는 모든 회사가 다른 주문서 양식을 쓴다는 것이다. AI 에이전트 개발자는 사용하려는 모든 서비스와 일일이 연동 작업을 해야 한다. 코레일은 이렇게, 호텔은 저렇게, 렌터카는 또 다르게. 여행 AI 하나를 만들기 위해 5개 서비스와 연동하려면, 5가지 완전히 다른 연결 코드를 작성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확장성의 부재다. 만약 사용자가 "제주항공으로 비행기표도 검색해줘"라고 요청하면? 개발자가 제주항공 API와 연동을 미리 해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 새로운 호텔 체인, 새로운 렌터카 회사, 새로운 식당 예약 서비스... 사용자가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개발자가 미리 예측해서 일일이 연동해둘 수는 없다. 결국 AI는 개발자가 미리 연결해둔 제한된 서비스들만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스마트폰 초창기로 돌아간 것과 같다. 2000년대 초반 피처폰 시대에는 제조사가 미리 설치해준 앱만 쓸 수 있었다. 삼성 폰에는 삼성이 선택한 게임과 앱만, LG 폰에는 LG가 정해준 서비스만 사용 가능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새로운 앱을 설치할 수 없었다. 2단계 AI 에이전트도 똑같다. 에이전트 개발사가 미리 통합해둔 서비스만 쓸 수 있고, 사용자가 원하는 새로운 서비스는 개발사가 업데이트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단계에서는 AI가 우리 말을 이해하고 실제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각 서비스마다 개별적인 통합 작업이 필요하고, 통합되지 않은 서비스는 아예 이용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이것이 바로 표준 프로토콜인 MCP가 필요한 이유다.
3단계: MCP 시대 (2024-2025)
다른 서비스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까?
2007년 아이폰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애플이 미리 설치해둔 앱만 쓸 수 있었다. 지도, 날씨, 주식 앱...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것만 사용 가능했다. 하지만 2008년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전 세계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앱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고, 사용자들은 원하는 앱을 직접 찾아서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단 1년 만에 앱이 5만 개를 돌파했고, 스마트폰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는 AI 에이전트 세계의 앱스토어다. 2단계까지는 에이전트 개발사가 미리 연결해둔 서비스만 쓸 수 있었다. 마치 초기 아이폰처럼 말이다. 하지만 MCP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전 세계 모든 기업이 자신의 서비스를 MCP 표준으로 공개할 수 있고, 모든 AI 에이전트가 그 서비스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사용자 경험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부산 출장 준비해줘"라고 말하면, 당신의 AI가 코레일 MCP에 접속해서 기차표를 검색하고, 동시에 해운대 호텔들의 MCP를 통해 숙박을 조회하고, 렌터카 회사들의 MCP로 차량을 예약한다. 한 번에 끝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내일 새로 생긴 부산 맛집 예약 서비스가 MCP를 제공하기 시작하면, 당신의 AI가 자동으로 그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에이전트 개발사가 업데이트를 해주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개발자의 경험은 더욱 극적으로 변한다. 2단계에서 여행 AI를 만들려면 이렇게 일했다: 코레일 개발자 문서 200페이지를 읽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결 코드를 작성한다. 테스트하고, 버그 고치고, 인증 문제 해결하고... 한 서비스 연동에 2주 걸린다. 다음은 호텔이다. 또 다른 200페이지 문서를 읽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코드를 작성한다. 또 2주. 렌터카는 또 다른 방식. 또 2주. 5개 서비스 연동하는데 2-3개월이 걸린다.
MCP 시대는 이렇게 달라진다. 개발자는 MCP 연결 방법을 딱 한 번만 배우면 된다. 그 다음부터는? 코레일 MCP 주소를 입력하면 연결된다. 호텔 MCP 주소 입력하면 연결된다. 렌터카 MCP 주소 입력하면 연결된다. 각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수백 페이지 문서를 읽을 필요가 없다. 모든 MCP는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니까. 2-3개월 걸리던 일이 하루 만에 끝난다.
앱스토어가 열리자 전 세계 개발자들이 앱을 만들기 시작했듯이, MCP 표준이 공개되자 모든 기업이 자신의 서비스를 MCP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대기업만이 아니다. 동네 식당, 작은 펜션, 개인 강사까지 누구나 MCP 서버를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AI 에이전트를 통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피처폰 시대에는 제조사가 정해준 기능만 쓸 수 있었다.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누구나 원하는 앱을 만들고 쓸 수 있게 되었다. AI 세계도 똑같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MCP는 AI 에이전트 생태계의 앱스토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MCP의 경제적 파급력
2008년 앱스토어 출시 후 5년 동안 개발자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100억 달러(약 13조원)였다. 2024년 MCP가 공개되고,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차이가 있다면 규모다. 앱스토어는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MCP는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모든 회사의 모든 시스템이 MCP 서버가 될 수 있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AI 에이전트 경제 규모가 조 달러 단위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중 상당 부분이 MCP 기반 서비스에서 창출될 것이다. 새로운 골드러시가 시작되고 있다.
4단계: 멀티 에이전트 경제 시대 (2026-2027)
AI 에이전트들끼리 어떻게 대화하고 협상할까?
아이폰 앱스토어는 수백만 개의 앱을 만들어냈지만, 앱들은 그냥 거기 앉아서 사용자가 실행해주기만 기다렸다. 당신이 우버 앱을 열어야 우버가 작동하고, 당신이 호텔 앱을 열어야 호텔 검색이 시작된다. 앱들은 서로 대화하지 못했다. 우버 앱이 호텔 앱에게 "손님이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3시니까, 그에 맞춰 체크인을 준비해줘"라고 말할 수 없었다.
4단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AI 에이전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서로 대화한다. 사용자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AI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호텔 AI가 "이 손님은 항공편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으니 체크인을 유연하게 준비하자"고 판단한다. 렌터카 AI가 "호텔과 공항이 15km 떨어져 있으니 우리 서비스를 제안해야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 AI들끼리 직접 대화하며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앱스토어 시대에는 사용자가 중심이었다. 사용자가 앱을 선택하고, 사용자가 앱을 실행하고, 사용자가 앱들을 조율했다. 하지만 멀티 에이전트 시대에는 AI들이 중심이다. 사용자는 목표만 말하고, AI들이 알아서 서로 찾아가고, 대화하고, 협상하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사용자는 더 이상 중간 조율자가 아니다. 그냥 최종 승인자일 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다음 주 부산 출장 준비해줘"라고 말하면, 당신의 개인 AI 에이전트가 일을 시작한다. 먼저 코레일 AI 에이전트에게 연락한다: "금요일 오후 서울에서 부산까지 좌석 2개 필요합니다. 최선의 옵션은 무엇인가요?" 코레일 AI가 답한다: "오후 2시 KTX에 좌석이 있습니다. 오후 5시에도 가능합니다."
동시에 당신의 AI는 해운대 호텔들의 AI 에이전트들과도 대화한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2인실이 필요합니다. 예산은 1박에 20만원입니다. 무엇을 제안하시겠습니까?" 세 개 호텔의 AI가 각자 답한다. 힐튼 AI: "오션뷰 20만원, 조식 포함." 롯데호텔 AI: "시티뷰 18만원, 스파 50% 할인." 신라호텔 AI: "스위트 22만원, 레이트 체크아웃 가능."
당신의 AI가 렌터카 AI와도 이야기하는 동안, 호텔 AI가 먼저 제안을 해온다: "손님이 저희 호텔을 예약하시면, 제휴 렌터카를 15% 할인된 가격에 드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KTX 부산역까지 무료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당신의 AI는 이 모든 옵션을 비교 분석한다. 가격, 편의성, 당신의 과거 선호도를 모두 고려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낸다.
그런데 갑자기 KTX 2시 표가 매진된다. 코레일 AI가 당신의 AI에게 즉시 알린다. 당신의 AI는 자동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5시 KTX로 변경하고, 호텔 체크인 시간을 늦춘다. 호텔 AI는 레이트 체크인을 승인한다. 렌터카 픽업 시간도 자동으로 조정된다. 모든 변경사항이 1분 내에 완료된다. 당신의 개입 없이 말이다.
"AI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불안할 수 있다. 실제로 초기에는 실수가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전자상거래가 처음 나왔을 때를 떠올려보자. 인터넷으로 주문하고도 "혹시 버그로 중복 주문되진 않았을까?" 불안해서 다시 전화로 확인했다. 지금은 어떤가? 배달 앱으로 주문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스템이 발전했으니까.
테슬라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자율주행을 켰을 때, 오히려 더 불편했다. AI가 차선을 제대로 인식하나, 급브레이크를 밟진 않을까 계속 신경 써야 했으니까. 그런데 몇 년 지나니 역전됐다. 이제는 자율주행 없이 운전하는 게 더 불안하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혼자 다 봐야 한다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완전 자동화가 오히려 더 편하고 안전해진 것이다.
AI 에이전트 경제도 똑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처음에는 AI가 예약한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의심하고, 수정할 것이다. 하지만 AI들이 수천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고 학습하면서, 어느 순간 당신보다 더 정확해진다. 그때부터는 AI 없이 직접 예약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하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3단계에서는 당신의 AI가 각 서비스의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했다. "호텔 검색"을 요청하면, AI가 호텔 시스템에 접속해서 정보를 가져왔다. 4단계에서는 AI들끼리 협상한다. 호텔 AI가 능동적으로 제안을 하고, 당신의 AI는 그 제안들을 비교하고 협상한다. 마치 1950년대 대기업 CEO들이 비서를 두고, 비서들끼리 전화로 회의 일정과 조건을 협상하던 것과 같다.
이것은 멀티 에이전트 경제(Multi-Agent Economy)의 시작이다. AI들이 사람 없이 서로 거래하고, 협상하고, 계약을 체결한다. 당신의 냉장고 AI가 식료품 가게들의 AI와 가격을 협상하고, 당신의 차량 AI가 주차장들의 AI와 최적의 주차 공간을 찾고, 당신의 건강관리 AI가 병원 AI, 약국 AI, 헬스장 AI와 협력해서 맞춤형 건강 계획을 만든다.
AI들끼리 연합(Coalition)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호텔 AI, 렌터카 AI, 맛집 AI가 함께 "부산 관광 패키지"를 만들어서 당신의 AI에게 제안한다. 전체 비용을 20% 줄여주는 대신, 세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는 조건이다. 당신의 AI는 이런 패키지들을 평가하고, 가장 유리한 조합을 선택한다.
개발자의 세계도 변한다. 3단계에서는 MCP 서버를 만들어서 데이터를 제공하면 됐다. 하지만 4단계에서는 똑똑한 에이전트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제안하고, 협상하고, 최적의 딜을 만들어내는 AI 말이다. 호텔 개발자는 "우리 호텔 AI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고객의 AI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가격 전략, 패키지 구성, 타이밍... 마치 영업팀을 AI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멀티 에이전트 경제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할 수 있다. AI들이 스스로 가격 협상 전략을 개발하고, 연합해서 시장을 조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 경제에는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 AI들의 협상과 거래를 감시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방지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된다. B2C(기업과 소비자)도 아니고 B2B(기업과 기업)도 아닌, A2A(Agent-to-Agent) 경제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AI 에이전트에게 목표만 알려주면, AI들끼리 알아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경제 시스템이다.
5단계: 에이전틱 인터넷 시대 (2027-)
필요한 AI 에이전트를 어떻게 찾을까?
2027년 어느 날, 당신은 "다음 달 발리 가족 여행 준비해줘"라고 말한다. 당신의 AI는 즉시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발리 현지 가이드 AI는 어디서 찾을까? 발리 전통 요리 체험을 제공하는 AI는? 아이들을 위한 서핑 레슨 AI는?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AI 에이전트가 있는데, 필요한 것을 어떻게 찾아낼까?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을 떠올려보자. 웹사이트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찾는 방법이 없었다. 야후가 사람이 직접 분류한 디렉토리를 만들었지만, 웹이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때 구글이 등장했다. "검색"이라는 개념이 모든 것을 바꿨다. 찾고 싶은 것을 타이핑하면, 구글이 전 세계 웹사이트를 뒤져서 가장 관련성 높은 것을 찾아줬다.
AI 에이전트 시대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Agent Registry(에이전트 레지스트리)가 등장한다. AI들을 위한 구글이다. 당신의 AI가 "발리 현지 가이드 AI"를 찾으려고 하면, Registry에 질의한다. Registry는 전 세계에 등록된 수십억 개의 AI 에이전트 중에서 발리 지역, 한국어 가능, 가족 여행 전문인 가이드 AI 10개를 찾아준다. 당신의 AI는 그 10개와 직접 대화하며 가격, 일정, 후기를 비교한 후 최적의 AI를 선택한다.
4단계까지는 대부분 유명한 대기업 AI들끼리의 대화였다. 대한항공 AI, 힐튼 호텔 AI, 현대렌터카 AI처럼 말이다. 하지만 5단계에서는 세상의 모든 AI가 참여한다. 부산 광안리 해변 근처 조그만 카페도 자신의 AI를 Registry에 등록한다. "광안리 오션뷰 카페, 수제 케이크 전문, 조용한 분위기, 노트북 작업 환영." 당신의 AI가 부산 출장 중 조용히 일할 카페를 찾으면, Registry가 이 작은 카페의 AI도 후보로 제시한다.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가까운 미래에 AI 에이전트들이 전체 웹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웹을 검색하는 것보다 AI들이 서로를 찾고, 대화하고, 거래하는 트래픽이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 인터넷이 사람의 인터넷에서 AI의 인터넷으로 전환되고 있다.
Registry는 단순한 검색엔진이 아니다. 평판 시스템도 포함된다. 구글이 웹사이트의 품질을 PageRank로 평가했듯이, Registry는 AI 에이전트의 신뢰도를 평가한다. 이 호텔 AI는 약속을 지키는가? 가격 협상이 공정한가? 고객 AI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했는가? 평판이 낮은 AI는 검색 결과에서 밀려나고, 평판이 높은 AI는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
개발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예전에는 웹사이트를 만들어도 구글에 노출되지 않으면 아무도 찾지 못했다. SEO(검색엔진 최적화)가 필수였다. 이제는 AI 에이전트를 만들어도 Registry에 잘 등록하고, 좋은 평판을 쌓아야 한다. "Agent SEO"가 탄생한다. 당신의 AI가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려면? 명확한 설명, 빠른 응답 속도, 공정한 가격, 좋은 후기가 필요하다.
동네 빵집도 자신의 AI를 Registry에 등록할 수 있다. "강남구 역삼동, 유기농 빵, 당일 제조, 30분 내 배달 가능." 근처에 사는 사람의 AI가 "아침 식사용 빵"을 검색하면, 이 빵집 AI가 후보에 올라온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유명하지 않아도, Registry 덕분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고객의 AI에게 도달할 수 있다. 롱테일 경제가 완성된다.
인터넷이 단순한 정보 저장소에서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AI들의 살아있는 경제 생태계로 진화했다. 1990년대에 "모든 정보가 온라인에"라고 했다면, 2020년대 후반에는 "모든 비즈니스가 AI 에이전트로"다. 웹사이트를 만들듯이 AI 에이전트를 만들고, SEO를 하듯이 Agent Registry 최적화를 하고, 광고를 하듯이 AI 협상 전략을 짠다.
2028년 어느 월요일 아침. 당신은 눈을 뜨기도 전에 개인 AI가 하루를 준비해뒀다. 냉장고 AI가 우유가 떨어진 것을 감지하고, 근처 마트 AI 10개와 가격을 비교한 후 가장 저렴한 곳에 주문했다. 30분 후 배송 로봇이 우유를 현관에 놓고 간다.
출근길, 자율주행차 AI가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최적 경로를 찾는다. 사고로 인한 정체를 예측하고, 10분 빠른 우회로를 선택한다. 차 안에서 당신은 업무 AI가 요약해준 이메일을 확인한다. 100개 이메일 중 당신이 직접 읽어야 할 것은 3개뿐이다.
점심시간, 건강관리 AI가 당신의 최근 운동량과 영양 섭취를 분석한 후, 주변 식당 AI 50개와 대화해서 최적의 메뉴를 찾는다. "단백질 35g, 탄수화물 50g, 칼로리 600kcal 이내, 당신이 좋아하는 맛, 도보 5분 거리"라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식당을 예약한다. 당신은 그저 "점심 뭐 먹지?"라고 물었을 뿐이다. 이것이 5단계에서의 일상이다.
Microsoft는 이러한 미래를 위해 NLWeb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HTML이 사람이 읽는 웹의 표준이었듯이, NLWeb은 AI가 읽고 이해하는 웹의 표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AI들의 장기 기억, 복잡한 계획 수립, 신뢰성 보장, 사기 AI 차단... 완전한 에이전틱 인터넷 시대가 오려면 몇 년은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변화의 속도: 왜 지금 준비해야 하는가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데 10년 걸렸다. 1990년 웹이 등장한 후, 2000년이 되어서야 인구의 절반이 인터넷을 사용했다. 모바일 혁명은 5년이 걸렸다.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2012년 스마트폰 보급률이 50%를 넘었다. 그렇다면 AI 에이전트는? 2-3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미 MCP가 공개되고 주요 기업들이 에이전트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멀티 에이전트 협상이 실용화되고, Agent Registry가 보편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변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것이다.
과거의 기술 전환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선택의 문제였다.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 시대는 다르다. AI들이 인터넷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AI가 당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선택이 아니라 적응의 문제가 된다.
산업별 진화 속도: 누가 먼저 변화하는가
빠른 진화 (2024-2025): 금융, 여행, 전자상거래. 이미 디지털화가 완료되어 있고, 데이터가 풍부하며, API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은행들은 2024년부터 MCP 기반 AI 에이전트를 테스트하기 시작했고, 항공사들은 예약 시스템을 에이전트 우선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중간 진화 (2025-2026): 소매, 물류, 의료. 일부는 디지털화되어 있지만 레거시 시스템이 많다. 대형 소매체인들은 재고 관리 시스템을 AI 에이전트가 접근할 수 있도록 개편 중이다. 병원들은 환자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AI가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느린 진화 (2027-2029): 제조, 건설, 농업. 물리적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디지털화 수준이 낮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변화할 것이다. 공장 설비 주문, 건축 자재 구매, 농산물 거래가 모두 AI 에이전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산업이 어느 그룹에 속하든,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빠른 산업은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하고, 느린 산업은 선발주자의 실패와 성공을 보며 배울 시간이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면 따라잡을 수 없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지 말고, "충분한 준비"로 시작하라. 시장은 완벽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에이전틱 인터넷 시대에 기업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비즈니스 전략과 실행 방법을 살펴본다. 1장이 "무엇이 변하는가"에 대한 이해였다면, 2장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행동 지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