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슈퍼휴먼의 탄생

by 유호현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한계

실리콘밸리는 정말 솔직한 마켓이다. 나이, 체력, 실력, 열정, 협업 능력, 시장 요구, 협상 능력 등의 변화로 내 가치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나의 가치를 크게 키워서 파는 것도 나의 능력이고, 내 체력을 키우는 것도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마켓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생각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의 가치는 물론 능력과 시장 요구에 영향을 받지만 훨씬 두루뭉술한 느낌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들어가고, 성격도 들어간다. 따뜻한 리더십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잘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실리콘밸리는 내 가치가 오르면 민감하게 폭등하고, 가치가 떨어지면 폭락한다. 한국에서는 가치가 올라도 어느 정도, 가치가 떨어져도 어느 정도인 것 같다. 2012년 트위터에 자연언어처리 엔지니어로 입사하게 되었을 때 나는 2억 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4년 후 에어비앤비에 갈 때쯤에는 5억 원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꼼꼼하게 코드 리뷰를 못 하는 성격, 아니 뇌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코드를 꼼꼼하게 읽고 피드백을 주는 것은 시니어 엔지니어의 매우 중요한 자질이고, 시니어 이상 스태프나 프린시플 엔지니어가 되는 데 핵심적인 자질이었다. 나는 그걸 이상하리만큼 못했다. 내 코드는 진짜 잘 썼는데 남의 코드를 읽는 것은 진짜 못했다.

나는 학부 때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컴퓨터 과학이나 공학은 근처에도 못 갔다. 원체 이과적인 머리 자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늘 내가 모르는 컴퓨터 공학 지식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내 위에 있는 엔지니어들은 나에게 Race Condition, Asynchronous Processing 같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피드백을 주곤 했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따라가긴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공부를 해도 해도 모르는 부분이 또 나오곤 했다.

그래서 나의 가치는 연봉 5억 시니어 엔지니어에서 멈춰 섰다. 물론 엄청나게 좋은 위치이다. 평생 시니어 엔지니어로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엔지니어로 살다 죽기는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가지 꿈이 생겼다. 내가 배운 엔지니어링 능력을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도 만들어서 세상의 문제, 특히 정치의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좀 번 엔지니어의 허영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실력이 뛰어난 다른 친구들의 연봉은 7억을 넘어 10억으로 가고 있었다. 나의 가치를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지만 나에게는 그게 한계였던 것 같다. 실리콘밸리의 마켓은 그 한계를 숨기려고 해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본다. 물론 자신의 가치에 대한 뻥튀기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인도 출신의 달변가들도 있다. 그런데 뭐 난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니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양심상"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내가 했다고 하면서 가치를 뻥튀기하는 것을 잘 못 하도록 배워왔다.

코로나의 첫 해 2020년은 정말 힘든 해였다. 아이가 세 살이 되어서 육아 부담이 한창이었는데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회사 일은 원격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특히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그때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던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의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 일을 하다 보니 24시간이 모자란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5월에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의 대표주자 에어비앤비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했다. 나는 정리해고를 당한 운이 좋은 케이스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4년이면 입사 때 약속한 주식을 다 받게 되어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5억 중에 3억이 주식인데, 4년이 지나면 연봉이 5억에서 2~3억으로 줄어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다른 회사에 가면 연봉을 주식 포함 7억, 10억까지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퇴사를 하면 퇴직금이 없다. 한 달 지출이 1천만 원이 쉽게 넘어가는 실리콘밸리에서 한 달이라도 월급이 끊기는 것은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다. 반면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면 몇 달 치의 월급을 위로금으로 준다. 원래 2개월 치 정도를 받게 되는데 에어비앤비는 후하게 4개월 치를 주었다.

사업가의 한계

4개월 치의 월급을 받아든 나에게는 4개월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재미로 옥소폴리틱스를 계속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투자가 들어왔다. 투자를 해 달라고 IR을 돌아도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게 정치 스타트업 투자 유치인데, 스타트업이 정치를 바꿨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신 투자자분들이 큰 리스크를 지시고 투자를 해 주신 것이다. 그런 기적적인 일들 앞에 나는 졸지에 사업가가 되었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세상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법무, 재무, 세무, 행정, 투자 유치, 투자자 소통,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유저 소통, 유저 테스트, 직원 소통, 직원 관리, 특허 관리, 엔지니어링, 디자인, 마케팅 등등.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직원들을 뽑아서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나는 늘 방향을 잡고 다음 걸음을 떼어야 했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회사 전체가 멈췄다.

2022년 11월 ChatGPT 3.5가 나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가 정말 못하던 코드 리뷰도 해주고, 트위터에서 어렵게 해결하던 자연언어처리도 한 방에 되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코딩도 해주고, 법무, 재무, 세무, 행정에 대해 기본 지식을 다 가르쳐주었다. 뚜렷하지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도 더 강화해 주어서 투자자들과의 소통도 편해졌다. 디자인도 해 주고, 유저 테스트도 도와주었다.

하루는 팀원들과 문제가 생겼다. 미팅 시간에 의견 충돌로 고성이 오갔다. 그 회의를 그대로 녹음하여 AI와 상담을 했다. 누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물어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물었다. AI는 "팀장님이 하신 말씀은 너무 과장된 표현이 많았고요, 그것을 팀원들이 오해한 거예요. 과장된 표현은 실제로 합의를 이루는 데 도움이 안 돼요."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해 주었다. 여러 팩트 폭행을 AI에게 당하다 지쳐서 AI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가 다 잘못한 거야?"

"아니에요, 다 팀장님 잘못은 아니에요. 팀원들도 오해한 면이 있죠. 이렇게 팀원들과 어떻게 더 잘 소통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팀장님은 좋은 팀장님이에요."

마음에 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현타가 왔다. 내가 방금 AI에게 위로와 공감을 받은 건가?

슈퍼휴먼

내가 못하던 것들을 도와주는 것을 넘어 AI는 내가 상상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석 달 정도의 시간 동안 10개의 회사와 AI 컨설팅을 했고, 앱을 빌딩하고, 페이먼트 시스템을 세팅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기존의 나에 비해 20배 정도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어쩌면 100배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디자인, 법무 등 AI가 없었으면 아예 못했을 일들도 많으니 무한대의 속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난 슈퍼휴먼이 되었다.

슈퍼휴먼이라고 하지만 미래에는 모두가 갖는 속도일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다 슈퍼휴먼일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달 걸리는 거리를 3시간이면 이동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과도 통화를 하고, 하루 만에 미국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은 조선시대 사람들에 비해 100배 이상의 생산량이 아닐까? 편지를 수십 통 쓰고, 대화를 수십 번 하고, 이동을 한 달 치를 하고, 계산을 순식간에 해낸다.

문제는 이러한 속도의 변화가 100년이 아니라 5년 내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AI를 많이 쓰던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도 속도가 이미 달라졌다. 코딩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10년 전 자선 단체의 홈페이지를 만드려면 한 달이 걸렸다. 1년 전에는 만드려면 AI를 활용해 3일이 걸렸다. 어제는 20분 만에 했다. 샤워하러 들어갈 때 Replit에 프롬프트를 날리고 샤워하고 나오니 10여 페이지의 사이트가 이미지까지 생성되어 다 되어 있었다. 디플로이 버튼을 누르니 인터넷에 올라갔다. 코딩도, 서버 세팅도 내가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지금도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다. 컨설팅이나 강연도 1주일에 3회 이상을 하면서, 태재미래전략연구원에서 연구팀장을 주 3일 하고 있다. 짬짬이 책도 쓰고, 프롬프트를 날려서 5개의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 연구팀장, 작가, 교수, 엔지니어, 컨설턴트, 강사. 이렇게 7개의 직함을 가진 슈퍼휴먼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번아웃이 오기 시작했다.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극도의 정신적 피로감이 몰려왔다. 너무 힘들었다. AI는 충분히 잘 했다. AI는 충분히 빨랐다. 다만 내 인지 능력이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내 컴퓨터 화면은 ADHD 그 자체였다.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즉 집중력 부족과 너무 많은 행동을 산만하게 하는 증상이다.

내 컴퓨터 화면에는 4개의 Claude Code 에이전트가 동시에 4개의 프로젝트 코딩을 하고 있고, 또 하나의 에이전트가 내가 하는 말을 책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Gemini Deep Research가 연구를 하고 있고, Claude가 보고서를 쓰고 있다. 이메일의 답장도 Claude가 써내고 있다. 새로운 컨설팅과 강연 요청, 연구원에서의 팀원과의 소통, 윗분들과의 소통, 다른 팀들과의 소통도 몰려온다. 나중에는 카카오톡에 오는 메시지 하나도 힘겨워진다.

메신저는 또 왜 이리 많아졌는지.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텔레그램, 구글 챗, 문자 메시지, 디스코드, 슬랙, 왓츠앱이 화면에 떠 있다. 내가 올렸던 페이스북 글에 대한 반응도 브라우저 한구석에서 손짓을 한다.

그런데도 자꾸 "여유 시간"이 생긴다. AI에게 일을 주면 잠시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면 또 다른 일을 하려고 Context Switch를 한다. 다른 프로젝트 에이전트가 해 놓은 일을 봐주고 잠깐 숨을 돌리면 다른 에이전트가 또 일을 다 했다고 하고, 메신저에 메시지가 온다. "여유 시간"이 아니다. 이전에 코딩할 때에는 모든 것을 끄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일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 하고, 또 일 시키고 다른 일 하고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 위해 급기야는 게임을 시작했다. 언제든 일시정지 할 수 있는 게임을 골라 AI가 돌아가는 동안 게임을 했다. 그렇게 하면 Context Switching을 최소화할 수 있다. 게임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상태인 괴이한 상태가 되었다.

슈퍼워크

그래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AI가 아닌 사람의 도움을 오랜만에 청하기로 했다. 옥소폴리틱스 사업을 할 때 콘텐츠 팀장이자 PO를 맡았던 김진실 매니저와 연락을 하여 SOS를 요청했다. 김진실 매니저는 흔쾌히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떻게 같이 일을 해야 할까?

내가 필요한 것은 AI를 나만큼 쓸 수 있는 나의 분신이었다. 특정한 역할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컨설턴트가 아니었다. AI에게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슈퍼휴먼이어야 했다.

그래서 엔지니어링 배경이 전혀 없는 김진실 매니저에게 엔지니어링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물론 컴퓨터 공학 4년 과정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AI 부트캠프 6개월 과정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바이브 코딩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만 가르쳐 주었고, 그 지식의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데 오히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지식들을 AI와 함께 정리하고 함께 목록을 만들어가며 김진실 매니저에게 기본 지식을 전수하는 데 성공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아야 하는 것들의 목록을 주면 AI와 스스로 학습을 해 나갔다.

그리고 김 매니저는 일주일 만에 Claude Code로 코딩을 하고, 프로젝트 매니징 툴을 만들고, 프로덕트 매니징을 하고, 고객 관리를 하는 또 다른 슈퍼휴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수십 개의 AI를 거느린 두 명의 매니저가 협업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 책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미래를 조망해 본다. 에이전트들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그려본다.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로 어떠한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려본다.

2부에는 슈퍼휴먼이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AI가 강화시키는 슈퍼휴먼은 기본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시키는 매니저가 된다. 그렇지만 그 전환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필요로 한다.

3부에서는 슈퍼휴먼들이 함께 일하는 방법, 즉 슈퍼워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슈퍼휴먼들끼리 일을 할 때에는 더 이상 작은 일을 나눠서 줄 수가 없다. 매니저도, 팀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을 하는 상황에서 작은 일을 나눠주는 것은 병목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