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쓸 줄 모르는 '프로덕트 엔지니어'
AI로 코딩하는 엔지니어라는 말은 몇 년 전만 해도 성립하지 않는 문장이었다. 코드를 쓸 줄 아느냐 모르느냐는 개발자와 비개발자를 나누는 가장 확실한 경계였다. 나는 그 경계 밖에서 오래도록 기획만 하며 일해왔다. 문과생, PD, PO, PM. 기술을 다루는 것은 늘 다른 직군의 일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Product Engineer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계획한 적도 없고, 목표로 삼은 적도 없는 길이었다. 그 변화는 너무 빠르고 다층적이어서 지금의 나조차도 이 상황이 흥미롭고 낯설다.
문을 닫자 새 문이 열렸다
많은 사람이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지금, 나는 이미 그 경험을 해봤다. 2023년까지 나는 옥소폴리틱스에서 콘텐츠 팀장과 PO로 AI 기반의 뉴스·리포트 기능을 만들었다. 프롬프트를 고도화하고, 품질을 개선하고, 모델을 훈련시키며 '사람 같은 결과'를 내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속한 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AI 때문은 아니었지만 회사는 30명에서 8명으로, 다시 3명으로 줄었고 AI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났다. AI 서비스를 만들며 대체 위기를 직감하는 그 과정은 단순한 두려움 이상의 복잡미묘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AI는 내 자리를 가져갔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기술을 직접 다루지 못했던 '기획자'였던 나는 AI 덕분에 엔지니어링 영역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 경험을 고민하고, 제품의 방향을 설계하는 능력. 내가 가진 본질적인 힘은 기술의 도움을 받아 더 멀리 확장되기 시작했다.
처음 호현 님이 바이브 코딩을 배워보라고 제안했을 때 Replit과 Cursor를 써봤다. 처음에는 PM으로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도구로만 여겼다. 현재는 주로 Claude Code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의 업무 방식과 영역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기획과 디자인, 개발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된다. AI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었다.
AI 시대를 사는 새로운 방식
그 과정에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슈퍼휴먼'이라는 개념을 처음 체감했다. 슈퍼휴먼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AI를 곁에 둔 채 여러 직무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AI는 내가 하지 못하던 일들을 대신해주는 것을 넘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와 범위로 나를 확장시켰다. 한 명이 여러 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대. 기술은 이미 사람의 능력을 대체하는 단계를 지나, 사람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깨달은 것이 있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 얼마 전 나노바나나를 써보고 싶었는데, 막상 열어보니 "뭘 만들지?" 싶었다. 딱히 만들고 싶은 게 없으니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들로 이미지 합성만 해보다 끝났다. 기술은 이제 조금만 찾아보면 확보할 수 있다. 결국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무엇을, 왜, 어떤 임팩트로 만들고 싶은지가 없으면 창작은 시작되지 않는다. 진짜 희소한 건 만들고 싶은 무언가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솔직히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AI와 함께 일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AI 시대의 핵심은 전공이나 기술 실력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정의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AI와 함께 실현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즉, 코드를 직접 쓰느냐,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엇(What)'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PM과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링을 하고 엔지니어가 디자인을 하거나 기획을 하는 크로스오버가 이뤄질 때 제일 중요한 핵심은 '기획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AI가 지금도 잘하지만 앞으로 더 잘할 테니까.
이 책은 내가 AI에게 대체되었다가 다시 AI로 역량을 확장한 경험의 기록이자, 앞으로 많은 사람이 마주할 변화의 서막이기도 하다. 두려움이 아니라 일단 사용해보는 도전과 실험이 필요하다. AI가 나의 가능성을 넓히는 기술이 될지, 위협이 될지는 지금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