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만에 책 한 권을 번역하는 시대
한 번은 책 번역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는데, Claude Code를 사용하니 책 전체 내용이 20분 만에 번역되었다. 정확히는 18분 걸렸다. 나는 타이머를 켜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혼자 했다면 몇 주는 걸렸을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AI 작업에도 명확한 진화 단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작업이 빨라졌다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내가 모든 세부 작업을 직접 수행했다. 번역할 텍스트를 찾고, 복사하고, AI에게 붙여넣고, 결과를 받아서 다시 복사하고, 문서에 붙여넣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했다. 이 방식에서 나는 '실행자'였다. 모든 단계를 내가 직접 조작했고, 내 손이 멈추면 작업도 멈췄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달랐다. 나는 단 한 문장만 입력했다. "이 책을 번역해줘." 그리고 나서 내가 한 일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Claude Code는 스스로 판단해서 책을 12개 챕터로 나누었고, 각 챕터마다 별도의 작업 프로세스를 동시에 실행했다. 나는 화면에서 12개의 진행 상황이 동시에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며, 이것이 단순한 속도 개선이 아니라 작업 방식의 근본적 전환임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실행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되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만 명확히 하면 되었다.
AI 작업은 세 단계로 진화해왔다. 1단계는 수동 반복 작업이다. ChatGPT나 Claude 창을 열어놓고, 한 부분씩 복사해서 붙여넣고, 번역된 걸 받아서 또 복사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가장 간단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혼자 번역할 때보다는 100배 빠르지만, 두꺼운 책 한 권을 완성하려면 사람이 계속 붙어서 복사+붙여넣기를 수행하고, 결과를 검토하며 몇 주 정도 작업해야 할 것이다.
2단계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동화하기다. 파이썬으로 코드를 짜거나 자동화 도구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이다. 파일을 통째로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챕터를 쪼개고, AI에게 보내고, 번역본을 받아서 결과를 정리해준다. 사람은 그냥 시작 버튼만 누르면 된다. 단, 이 방법은 AI에게 직접 명령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AI 서비스의 인증키를 발급받아야 하고, 코드 실행 방법도 알아야 한다.
3단계는 에이전트 자율 실행이다. Claude Code에게 "이 책 번역해줘"라고 말하면 끝이다. AI 에이전트가 대신 일해주는 미래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람이 "이 책 번역해줘"라고 입력하면, Claude Code가 알아서 책을 챕터별로 쪼개고 각 챕터마다 별도의 작업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동시에 번역한다. 나의 경우, 12개 챕터가 동시에 번역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 3단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추상화의 수준'이다. 1단계에서 우리는 모든 세부 동작을 직접 지정한다. "이 텍스트를 복사해서 저기에 붙여넣어"처럼 손가락 움직임 수준의 명령을 내린다. 2단계에서는 한 단계 추상화된다. "이 파일의 모든 챕터를 순서대로 번역해"라고 지시하면, 프로그램이 세부 동작을 알아서 처리한다. 3단계에서는 추상화가 최고 수준에 이른다. "이 책을 번역해"라는 목표만 제시하면, 에이전트가 최적의 방법을 스스로 결정한다. 챕터를 몇 개로 나눌지, 동시에 처리할지 순차적으로 처리할지, 어떤 번역 스타일을 적용할지 모두 자율적으로 판단한다.
🧺 비유하자면 이렇다
- 0단계: 손빨래 (직접 번역)
- 1단계: 세탁기에 한 바구니씩 넣고 빼기 (AI한테 여러 페이지를 한 묶음씩 반복 작업)
- 2단계: 컨베이어 벨트로 바구니들을 순차 세탁 처리 (프로그램이 작업들을 차례대로 자동 처리)
- 3단계: "빨래 해줘" 한 마디에 세탁기 12대를 알아서 빌려와 동시 작동 (에이전트가 최적 방법 판단, 병렬 처리)
추상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무엇을'에 집중하고 '어떻게'에서 자유로워진다. 이것은 단순히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인지 자원이 해방된다는 의미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빼는 반복 작업에 집중하느라 "어떤 빨래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여유가 없었던 사람이, 이제 "빨래 해줘" 한 마디로 작업을 위임하고 나면 더 중요한 결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번역 프로젝트로 돌아가면, 나는 더 이상 "다음 챕터를 어떻게 복사해서 붙여넣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이 번역이 원문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문장인가?"처럼 본질적인 질문에 시간을 쓸 수 있다.
Claude Code는 개발자를 위한 코딩 도구로 만들어졌지만, 번역도 훌륭하게 처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할까?"를 스스로 판단해서 처리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AI 서비스 인증키를 발급받을 필요도 없고, 복잡한 설정을 만질 필요도 없다. 그냥 파일을 건네며 "해줘"라고 말하면 알아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실행한다. 이것이 에이전트 시대의 본질이다.
AI에게 일일이 복사-붙여넣기 하던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2024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새로운 작업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전환은 기술적 변화를 넘어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내가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는 목표를 제시하고 에이전트가 실행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이브 코딩이 추구하는 창작자의 모습이다.
창작의 패러다임 전환
전통적 창작은 '감성과 영감'에 의존한다. 뮤즈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완벽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업이 시작되고 끝날 수 있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창작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이제 창작은 감성에 의존하는 비정형적 활동에서 벗어나, 구조화된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로 전환될 것이다. 이것은 예술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가 더 높은 차원의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건축가가 벽돌 하나하나를 직접 쌓지 않아도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듯, 창작자도 세부 작업에서 해방되어 더 본질적인 창작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문제가 있다. 작품이 길어질수록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1장에서 설정한 캐릭터 특징이 10장에서는 다르게 묘사되고, 초반에 제시한 세계관 규칙이 후반에는 모순된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흔히 겪는 '버그'와 똑같은 문제다. 개발자들이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할 때, 중요한 정보를 한 곳에 모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는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회원 정보를 100개 페이지에 각각 따로 적어두는 게 아니라, 중앙의 한 곳에만 저장하고 모든 페이지가 그곳을 참조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회원 나이를 수정할 때 한 곳만 바꾸면 100개 페이지에 자동으로 반영된다.
창작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각 장을 독립적인 블록으로, 캐릭터 설정을 중앙 관리 파일로, 스토리 흐름을 연쇄 반응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사고방식이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때 각 층을 독립적으로 설계하면서도 전체 구조의 일관성을 유지하듯, 창작자도 각 부분을 독립적으로 작성하면서도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창작을 시스템으로 접근하면 심리적 부담도 줄어든다. "혹시 설정이 바뀌진 않았을까?"라는 불안 없이, "지금 이 장면에서 캐릭터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본질적인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시스템이 세부 사항을 관리해 주니, 창작자는 더 중요한 것, 즉 독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장면, 예상치 못한 플롯 전개, 캐릭터의 내면적 성장 같은 진짜 창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나는 이 방식을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단순한 코딩 방식이 아니다. 창작을 소프트웨어 개발처럼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구체적으로는 모듈화, 버전 관리, 자동화, 테스트, 리팩토링이라는 개발 원리를 창작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바이브 코딩은 빠르고 유연하며 확장 가능한 창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Tesla의 CEO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OpenAI의 연구이사였던 Andrej Karpathy는 2025년 1월, AI 시대의 개발 방식에 대해 "vibe-based developmen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것은 코드를 실행하고 전체적인 느낌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AI에게 반복 개선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마치 주니어 직원에게 피드백을 주며 가르치는 것처럼 말이다.
Karpathy가 말한 vibe-based development가 AI 시대의 개발 방식을 설명했다면, 이 책의 바이브 코딩은 이 사고방식을 창작 전 분야로 확장한 개념이다. 즉, 개발자처럼 사고하며 AI에게 작업을 위임하고, 창작자는 시스템과 방향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AI 시대의 창작자는 더 이상 영감의 방문을 기다리는 예술가에 머물지 않는다. 창작자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AI를 지휘하며,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듀서로 진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옥소폴리틱스 2.0과 cocoun.org를 개발하며 더욱 선명해졌다. 2024년 겨울, 나는 cocoun.org의 전체 구조를 Claude Code와 함께 재설계하고 있었다. 한밤중이었다. 나는 "네비게이션 구조를 개선해 줘. 사용자 경험이 더 직관적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입력했다. 그리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Claude Code가 30개 파일을 수정하고, 새로운 구성 요소를 만들고, 작동 검증까지 완료해 둔 상태였다.
놀라웠다. 이건 단순히 작업이 빨라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잠자는 동안에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일은 검토였다. 30개 파일의 변경사항을 하나씩 살펴보며, "이 부분은 좋은데 저 부분은 다르게 하고 싶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Claude Code는 내 피드백을 반영해 다시 수정했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자, 정확히 내가 원하던 결과가 나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AI의 감독자이자 시스템 설계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개선하는 것이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각 악기 연주자에게 "바이올린은 더 부드럽게, 첼로는 더 강렬하게"라고 지시하며 전체 음악을 조율하듯, 나는 AI에게 방향을 제시하며 프로젝트 전체를 조율하고 있었다. 지휘자가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아도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듯, 나는 모든 코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아도 웹사이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AI 에이전트와 함께 작품을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며 나는, 창작과 개발의 방법론적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설을 쓰는 것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작업이었다. 구조를 설계하고, 요소들을 조합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 이것이 AI 시대의 창작이다.
Andrej Karpathy on Vibe-based Development
"the amount of code you can understand in a single glance is increasing. refactoring becomes more common and powerful. there's an emergence of "vibe-based development" in addition to test-driven development. you run the code, look at the vibe, and if something feels off or you're not happy with it you just ask the AI to iterate on it until you are. in the limit it feels like you're a supervisor giving feedback to an junior employee and teaching them what you're looking for exactly."
한국어 번역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코드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 리팩토링은 더 일반적이고 강력해진다. 테스트 주도 개발(TDD)에 더해 '바이브 기반 개발'이 등장하고 있다. 코드를 실행하고 전체적인 느낌을 보고, 뭔가 이상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AI에게 만족할 때까지 반복 개선을 요청한다. 궁극적으로는 마치 당신이 주니어 직원에게 피드백을 주고,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가르치는 슈퍼바이저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바이브 코딩의 핵심 원리
바이브 코딩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핵심 원리들을 발견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작품을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며 체득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 모듈화 사고
소설을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 덩어리로 보지 않고, 독립적인 블록들의 조합으로 바라본다. 각 장, 각 캐릭터, 각 플롯 라인을 별도의 조각처럼 설계해 관리한다. 이것은 레고 블록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각 블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조합하면 전체 구조를 이룬다. 한 블록을 빼내어 다른 블록으로 교체할 수 있고, 새로운 블록을 추가해 구조를 확장할 수도 있다.
장편 창작물에서 캐릭터 설정을 관리할 때 흔히 겪는 문제가 있다. 각 장에 캐릭터 정보를 직접 적어 넣으면, 나중에 설정을 수정할 때 모든 파일을 일일이 열어서 바꿔야 한다. 주인공의 나이를 18세에서 19세로 바꾸려면 12개 파일을 수정해야 하고, 한 곳을 빠뜨리면 작품 전체에 모순이 생긴다. 개발자는 이런 문제를 중앙 관리 방식으로 해결한다. 중요한 정보를 한 곳에 모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참조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창작에 적용하면 극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캐릭터 나이를 바꾸려면 한 줄만 수정하면 된다. 모든 장면에 자동으로 반영된다. 이것은 단순히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창작자의 인지 부담이 근본적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더 이상 "저 장면에서 이 설정을 뭐라고 썼더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걱정에서 해방되니, 진짜 중요한 것, 즉 캐릭터가 이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지에 집중할 수 있다.
모듈화 사고의 핵심은 전체를 한 번에 만들지 않고, 각 부분을 레고 블록처럼 따로 만들어 조립하는 것이다. 모든 설정을 한 곳에 모아두고, 재사용 가능한 템플릿을 구축한다. 예를 들어 "갈등 장면"이나 "대화 장면" 같은 구조를 미리 만들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세부 내용만 채워 넣는다. 같은 정보를 여러 곳에 반복하지 않고 한 곳에서만 수정하면 전체에 반영되도록 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모듈화의 진정한 가치는 유연성에 있다. 전체를 다시 쓰지 않고도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 3장이 마음에 안 들면, 3장만 완전히 다시 쓰고 나머지는 그대로 둘 수 있다.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고 싶으면, 중앙 관리 파일에 한 항목만 추가하면 그 캐릭터가 필요한 모든 장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창작을 반복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프로세스로 전환시킨다.
2. 버전 관리와 협업
창작물의 모든 변화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변경 이력 추적 시스템처럼, 작품의 모든 수정 사항을 날짜별로 저장하고 필요하면 이전 버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 AI와의 협업은 제안 및 검토 과정으로 운영한다. AI가 무언가를 제안하면, 그것을 바로 적용하지 않고 먼저 검토한다. 마음에 들면 채택하고, 아니면 수정을 요청하거나 거부한다.
창작물의 핵심 부분을 완전히 바꾸는 실험을 할 때 버전 관리가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소설의 엔딩을 희망적 분위기에서 비극적 분위기로 바꾸고 싶다고 해보자. 전통적 방식이라면 기존 원고를 덮어쓰고, 마음에 안 들면 복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별도의 작업 공간을 만들어 실험하면 다르다. 원본은 그대로 두고 복사본에서 새 버전을 작성한다. 완성 후 두 버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고, 피드백을 받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실험 버전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삭제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다. 나중에 다른 프로젝트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전 관리가 주는 가장 큰 혜택은 심리적 안전감이다. "실험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긴다. 원본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으니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실패해도 손실이 없다. 이것은 창작자에게 엄청난 자유를 준다.
AI와 협업할 때도 이 방식이 효과적이다. AI가 제안을 하면, 검토하고, 수정을 요청하고, 최종적으로 작품에 통합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각 수정사항에는 명확한 기록을 남긴다. 무엇을 왜 바꿨는지 한 줄로 적어둔다. "3월 15일: 주인공 나이를 19세로 수정 (독자 피드백 반영)"처럼 간결하게 기록한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작품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언제든 이전 버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만들었다. 새로운 수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클릭 한 번으로 이전 상태로 복구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별도 작업 공간에서 시험한 뒤 본문에 통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본문을 망칠 위험 없이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다. 버전 관리는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3. 자동화와 테스팅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창작물의 품질을 체계적으로 검증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코드의 각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자동으로 검사하듯, 창작자도 스토리의 일관성, 시간 흐름, 문체를 지속적으로 검증한다. 이것은 창작자를 기계적 작업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창작에 집중하게 만든다.
작품이 길어질수록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1장에서 귀마가 날개가 있다고 묘사했는데, 7장에서는 날개가 없이 등장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발견하려면 전체 원고를 다시 읽어야 하는데, 200페이지 분량이면 최소 몇 시간은 걸린다. 그것도 집중해서 읽으면서 모순을 찾아야 하니,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작업이다.
나는 Claude Code에게 "귀마의 외형 묘사를 전체 텍스트에서 찾아서 일관성을 검사해 줘"라고 요청했다. 몇 초 만에 31곳의 불일치를 찾아냈다. 어떤 곳에서는 "날개"라고 했고, 어떤 곳에서는 "검은 날개", 또 어떤 곳에서는 아예 날개 묘사가 빠져 있었다. AI가 자동으로 이런 문제를 찾아주니, 나는 수정 방향만 결정하면 되었다. 200페이지를 읽는 몇 시간 대신, 31곳의 목록을 검토하는 10분이면 충분했다.
캐릭터 일관성 자동 검사는 기본이다. 스토리의 시간 흐름도 검증한다. "3장에서 봄이었는데 5장에서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같은 모순을 자동으로 찾아낸다. 문체 일관성도 모니터링한다. 1장은 격식 있는 문체인데 10장은 구어체로 바뀌었다면, AI가 알려준다. 오타 및 문법 자동 수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기계적 작업은 모두 AI에게 맡기고, 나는 "이 장면이 독자의 감정을 제대로 움직이는가?"같은 본질적 질문에 집중한다.
자동화의 진정한 가치는 인지 부담의 감소다. 우리의 뇌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오타를 찾는 데 에너지를 쓰면, 플롯을 개선하는 데 쓸 에너지가 줄어든다. 일관성 검사에 시간을 쓰면, 캐릭터 개발에 쓸 시간이 줄어든다. 자동화는 이런 트레이드오프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기계적 작업은 AI가 처리하고, 창작자는 창의적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 창작의 핵심이다.
실전 바이브 코딩: 명령어 체계
바이브 코딩의 핵심은 창작 과정을 명확한 '명령어'로 구조화하는 것이다.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지시 대신,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명령을 사용한다. 이것은 단순히 말하기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사고 방식 자체를 전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을 확인해 줘"라고 AI에게 요청하면, AI는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전체 텍스트에서 주인공의 성격 표현이 일관되게 쓰였는지 확인해 줘"라고 하면, AI는 전체 원고를 분석해서 모순되는 부분을 찾아낸다. 1장에서는 내성적이었는데 5장에서는 외향적으로 묘사되는 식의 불일치를 자동으로 검출한다. 이것은 사람이 전체 원고를 읽으며 찾으려면 몇 시간이 걸릴 작업을 몇 초 만에 처리한 것이다.
설정을 업데이트하고 싶을 때도 명확한 명령이 효과적이다. "주인공의 직업을 변호사에서 의사로 바꿔 줘. 전체 장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해 줘"라고 요청한다. AI는 직업과 관련된 모든 표현을 찾아서 맥락에 맞게 수정한다. 법정 장면은 병원 장면으로, 법률 용어는 의학 용어로 자동 변환된다.
스토리 구조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스토리 구조를 분석해서 플롯 홀을 찾아 줘. 수정 방안도 제시해 줘"라고 요청한다. AI는 전체 스토리를 분석해서 "3장에서 주인공이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5장에서 다시 그 비밀을 몰라하는 모순", "7장의 전투 결과가 8장과 연결되지 않음", "9장의 시간 흐름이 불명확함" 같은 문제들을 찾아내고, 각각에 대한 수정 방안을 제안한다.
문체의 일관성도 자동으로 관리할 수 있다. "전체 챕터의 문체를 1장 기준으로 통일해 줘"라고 하면, AI는 1장의 평균 문장 길이, 어조, 리듬, 단어 선택 패턴을 분석하고, 나머지 장들을 같은 스타일로 조정한다. 10장이 갑자기 구어체로 바뀌었다면 격식 있는 문체로 되돌리고, 15장의 문장이 너무 길다면 1장과 비슷한 길이로 쪼갠다.
이런 명령어 기반 사고는 AI와의 협업을 극도로 효율적으로 만든다. "더 감동적으로 써줘" 같은 주관적이고 추상적 요청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 표현을 구체적 행동으로 변환하되, 기존 성격 설정과 일관성을 유지하라"처럼 정확히 실행 가능한 작업 단위로 지시문을 바꿀 수 있다. "더 감동적으로"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감정을 구체적 행동으로 표현"은 명확한 지침이다.
처음에는 이런 명령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구체적 명령으로 바꾸려면 사고방식 자체를 전환해야 했다. "좀 더 긴장감 있게"를 어떻게 명령어로 바꿀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깨달았다. 긴장감은 문장 길이, 동사 빈도, 리듬 패턴으로 측정할 수 있다. "평균 문장 길이를 20% 줄이고, 동사 비율을 40%로 높이며,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교대로 배치하라"로 변환할 수 있었다.
이 번역 과정은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긴장감"을 숫자와 규칙으로 분해하려니 창작의 본질을 잃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자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장감 있는 장면들을 모아서 분석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짧은 문장이 많다. 동사가 많다. 리듬이 빠르다. 설명이 적고 행동이 많다. 이런 패턴들을 규칙으로 정리하자, "긴장감 있게"를 구체적 명령으로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번역 능력이 생기자, AI와의 협업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AI가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했다. 수정을 요청할 때도 명확했다. "좀 더 고쳐줘"가 아니라 "3번 문단의 주어를 '나'에서 '우리'로 바꾸고, 수동태를 능동태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결과물의 품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AI는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서 실행했고, 나는 결과물을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만 조정하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창작을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바이브 코딩의 핵심이다. 감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실행 가능한 명령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시인은 "슬프다"라고 쓰지 않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고 쓴다. 마찬가지로 바이브 코딩에서는 "더 감동적으로"라고 하지 않고 "캐릭터의 내적 갈등을 구체적 행동과 대화로 표현하되, 직접적 감정 서술은 피한다"고 말한다. 둘 다 같은 의도지만, 하나는 AI가 실행할 수 없고 다른 하나는 실행할 수 있다. 이 번역 능력이야말로 AI 시대 창작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다.
디버깅 사고: 창작의 문제 해결
프로그래머가 버그를 찾아 수정하듯, 바이브 코딩에서는 스토리의 '버그'를 체계적으로 찾아 수정한다.
K-pop Demon Hunters 5장을 쓰고 나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자 피드백에서도 "5장의 액션 장면이 지루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통적 작가라면 "감이 안 좋았나 보다"며 넘어가거나, 막연하게 "더 긴장감 있게 다시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발자처럼 접근했다. 문제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Claude Code에게 5장의 문장 길이를 분석하게 했다. 평균 문장 길이가 32단어였다. 다른 액션 장면들은 평균 15단어였다. 문제를 찾았다. 긴장감 있는 액션 장면에는 짧고 강렬한 문장이 필요한데, 5장은 문장이 너무 길었다. 동사 사용 빈도도 체크했다. 5장은 명사와 형용사가 많고 동사가 적었다. 설명 위주의 서술이 액션의 속도감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문제가 명확했다. "더 긴장감 있게"라는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평균 문장 길이를 15단어로 줄이고, 동사 사용 비율을 40%로 높인다"는 구체적 수정 목표가 생겼다. AI에게 이 기준으로 리팩토링을 요청했고, 5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독자들의 반응도 즉시 개선되었다.
창작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소프트웨어 버그처럼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논리 버그. 스토리 내 인과관계나 설정이 모순되는 경우다. 캐릭터가 3장에서 죽었는데 7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식이다. 독자는 즉시 이 문제를 발견하고 작품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둘째, 일관성 버그. 캐릭터나 설정의 불일치다. 미영이 1장에서는 내성적인데 5장에서는 갑자기 외향적으로 바뀐다면, 독자는 혼란스러워한다. 셋째, 성능 버그.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서술적 문제다. 한 장면의 설명이 3페이지나 계속되면, 독자는 지루해서 책을 덮는다. 넷째, 호환성 버그. 타겟 독자층과 맞지 않는 요소다. 청소년 소설에 성인 콘텐츠가 들어가거나, 전문가용 기술 해설서가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 없이 시작한다면 문제가 된다.
이런 버그들을 체계적으로 디버깅한 사례를 살펴보자. 귀마의 성별이 일관되지 않다는 독자 피드백을 받았다. 전체 텍스트에서 귀마 관련 대명사와 표현을 검색했다. 어떤 장에서는 "그", 어떤 장에서는 "그녀", 또 어떤 장에서는 성별 중립적 표현을 썼다. 7개 파일 31곳에서 불일치가 발견되었다. 귀마를 성별 중립적 존재로 설정하기로 결정하고, 모든 곳에서 성별 특정 대명사를 제거했다. 30분 만에 모든 수정이 완료되었다.
액션 장면의 긴장감 부족 문제도 있었다. 막연하게 "더 긴장감 있게"라고 하는 대신, 문장 길이를 분석했다. 긴장감 있다고 평가받은 다른 액션 장면들은 평균 문장 길이가 12-15단어였다. 문제의 장면은 32단어였다. 동사 빈도도 체크했다. 좋은 액션 장면은 동사가 전체 단어의 40%였지만, 문제 장면은 25%에 불과했다. 명사와 형용사가 너무 많아서 설명 위주가 되어 있었다. 문장을 짧게 쪼개고, 설명을 줄이고, 동사를 늘렸다. 리팩토링 후 독자 피드백은 즉시 개선되었다.
이런 디버깅 사고를 통해 창작자는 감각이 아닌 구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작품의 완성도를 기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문장 길이가 32단어로 너무 길다"는 구체적 문제로 전환하면, 해결 방법도 명확해진다. 이것이 바이브 코딩의 힘이다.
새로운 창작자의 시대
바이브 코딩은 창작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창작자가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예술가의 감성과 개발자의 논리는 대립하지 않는다. 감성이 방향을 제시하면, 논리가 그것을 실현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이 둘의 융합이 AI 시대 창작자의 핵심 역량이다.
AI 에이전트 시대에 창작자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더 이상 모든 것을 직접 실행하는 실행자가 아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AI와 협업하는 설계자다. 세부 작업은 AI가 처리하고, 창작자는 방향 설정과 품질 판단에 집중한다. 이것은 창작자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인다. 기계적 작업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창의적인 결정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브 코딩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늘 당장 한 가지만 실천해 보라. 작업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것을 독립적인 모듈로 나눠보라. 자주 반복하는 작업이 있다면, AI에게 자동화를 요청해 보라. 수정한 내용을 간단히 기록해 보라. 이런 작은 변화가 쌓이면, 몇 달 뒤 당신은 완전히 다른 창작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AI 시대의 창작자는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AI와 협업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사람이다. 바이브 코딩은 그 시작점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창작 방식을 재설계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