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 04/07 ~ 04/13
상담 접수 시스템
초기 면접의 구조를 디지털화할 때, 위기 상황의 안전한 감지와 연계는 어떻게 설계하는가?
이번 주 읽기: 첫 만남의 디지털 전환
상담에서 “첫 만남”을 초기 면접(intake interview, 내담자가 상담 기관에 처음 와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절차)이라고 부른다. 병원에서 진료 전에 접수 서류를 쓰는 것처럼, 상담에서도 이름, 연락처, 과거 상담 경험, 주호소(chief complaint, 지금 가장 힘든 문제)를 먼저 수집한다. 보통 50~90분이 걸리는데, 이 중 15~20분은 이름이나 연락처 같은 행정적 정보 수집에 쓰인다. 나머지 시간에 상담사는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의 표정, 말투, 몸짓을 관찰하면서 신뢰 관계(라포, rapport)를 쌓는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행정적 정보 수집에 15~20분을 쓰는 것이 정말 효율적인가? 이름, 연락처, 보험 정보를 묻고 적는 데 50분 회기의 30~40%를 쓰면, 정작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줄어든다. 내담자 입장에서도 처음 만나는 상담사 앞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시간은 어색하고 긴장되는 시간이다.
Gainer(2025)는 여기서 발상을 전환한다. 행정적 정보 수집을 온라인 폼으로 옮기면 대면 시간의 30~40%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담자가 집에서 미리 기본 정보를 입력해 두면, 상담사는 대면에서 “접수서에 논문 스트레스라고 적어주셨는데, 조금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다. 서류 작업 대신 경청에 시간을 쓰는 구조다. 이것은 기술이 상담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가 가장 잘하는 일(경청, 공감, 관계 형성)에 집중하도록 행정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세네카 R. 게이너
디지털 접수의 목적은 상담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가 가장 잘하는 것 — 경청, 공감, 관계 형성 — 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 Gainer (2025, p. 211)디지털 접수의 또 다른 장점은 “솔직성의 증가”다. 연구에 따르면 민감한 질문(음주량, 약물 사용, 자해 경험 등)에 대해 사람들은 대면보다 온라인에서 더 솔직하게 답한다. 상담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자기 속도로 생각하면서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항상 장점만은 아니다. 상담사가 대면에서 직접 물을 때는 내담자의 표정과 반응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지만, 온라인 폼에서는 그 정보가 사라진다.
위기 스크리닝 도구: PHQ-9, GAD-7, C-SSRS
상담 접수에서 가장 급한 질문은 “이 사람이 지금 위험한 상태인가?”이다. 이를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 표준화된 선별 도구(screening tool, 짧은 설문으로 위험 수준을 걸러내는 검사)를 쓴다. 선별 도구는 진단 도구가 아니다. “이 사람이 우울증이다”라고 확정짓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추가 평가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병원에서 체온계로 열을 재는 것과 비슷하다. 38도가 나왔다고 바로 독감 진단을 내리지는 않지만,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신호는 된다.
Kurt Kroenke등(2001)이 만든 PHQ-9(Patient Health Questionnaire-9, 우울 증상을 0~27점으로 측정하는 9문항 설문)이 대표적이다. “지난 2주 동안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했나요?” 같은 질문에 0(전혀 아님)~3(거의 매일)으로 답한다. 10점 이상이면 우울증 가능성이 높아 추가 평가가 필요하다. PHQ-9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우울 선별 도구인 이유는 간결함(9문항, 2분 소요)과 정확성(민감도 88%, 특이도 88%)의 균형 때문이다.
PHQ-9에서 특히 주의할 건 9번 문항이다. “자해에 대한 생각, 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묻는 이 문항에서 1점 이상이 나오면, 다른 점수와 상관없이 자살 위험 평가를 해야 한다. 총점이 5점(경도)이어도 9번에서 1점이 나오면 위기 프로토콜이 작동해야 한다. 디지털 접수에서 이 문항은 위기 감지의 첫 번째 관문이다.
GAD-7(Generalized Anxiety Disorder-7, 불안 증상을 0~21점으로 측정하는 7문항 설문)은 PHQ-9과 같은 4점 척도를 쓰며 절단점은 10점이다. PHQ-9과 GAD-7을 함께 실시하면 우울과 불안이 함께 나타나는 패턴(공존, comorbidity)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PHQ-9은 12점인데 GAD-7은 18점”이라면, 우울보다 불안이 더 두드러진 상태라는 단서를 얻는다. 이 정보는 상담사가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어디에 먼저 집중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켈리 포스너
자살 위기 스크리닝은 실패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위양성(괜히 걱정한 것)은 불필요한 개입이라는 비용을 치르지만, 위음성(위험을 놓친 것)은 생명을 잃는 대가를 치른다.
— Posner et al. (2011)Kelly Posner등(2011)이 만든 C-SSRS(Columbia Suicide Severity Rating Scale, 자살 위험을 5단계로 평가하는 국제 표준 도구)는 자살 생각의 심각도를 단계별로 구분한다 — (1)죽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2)방법은 없지만 구체적 생각, (3)방법이 있는 구체적 생각, (4)방법과 일부 의도, (5)구체적 계획과 실행 의도. 3단계 이상이면 즉각적인 전문가 개입이 필요하다. FDA, WHO 등 140개 이상 기관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 도구가 중요한 이유는 “자살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의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라, 심각도의 스펙트럼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쿠르트 크뢴케
PHQ-9은 간결함과 정확성의 균형을 보여주는 도구다. 2분 안에 실시할 수 있으면서도 민감도 88%, 특이도 88%를 달성한다.
— Kroenke et al. (2001)이 세 도구(PHQ-9, GAD-7, C-SSRS)를 디지털 접수 시스템에 통합하면, 내담자가 폼을 작성하는 동시에 위기 수준이 자동으로 평가된다. 종이 검사에서는 상담사가 직접 채점해야 했지만, 디지털에서는 응답 즉시 점수가 산출되고, 위기 수준에 따라 다음 단계가 자동으로 결정된다. 이 자동화는 시간을 절약할 뿐 아니라, 채점 오류(수작업에서 가끔 발생하는)를 제거한다. 물론 자동 채점의 결과를 최종 판단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의 임상적 판단을 위한 “1차 정보”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조건부 분기: 답에 따라 질문이 달라지는 폼
디지털 접수 폼의 기술적 핵심은 “조건부 분기(conditional branching)”다. 쉽게 말해, 내담자의 답에 따라 다음 질문이 바뀌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이전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나요?”에 “예”라고 하면 “어떤 종류의 상담이었나요?”가 나오고, “아니오”라고 하면 바로 다음 섹션으로 넘어간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선물 포장 하시겠습니까?”에 예를 누르면 포장 옵션이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구조가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효율성 — 불필요한 질문을 건너뛰어 응답 부담을 줄인다. 조건부 분기가 없으면 모든 내담자에게 같은 30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분기가 있으면 각 내담자에게 필요한 15~20개만 물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치료적 이유다. 나와 상관없는 질문에 계속 답하면 “이 시스템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뢰가 깨진다. 맞춤형 질문 흐름은 기술적 효율이자 상담적 배려이기도 하다.
조건부 분기의 가장 중요한 적용 사례는 위기 감지다. PHQ-9 9번 문항에서 1점 이상이 나오면, 일반적인 다음 질문 대신 C-SSRS 간이 질문으로 자동 분기되어야 한다. 이 분기는 내담자에게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되, 뒤에서는 상담사에게 위기 플래그가 전달되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간단한 if-else 로직이지만, 상담적으로는 생명과 직결되는 설계 결정이다.

세네카 R. 게이너
디지털 접수 폼에서 조건부 분기는 단순한 기술적 기능이 아니다. 내담자에게 '이 시스템이 내 답을 듣고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며, 이는 디지털 치료적 동맹의 첫 번째 씨앗이 된다.
— Gainer (2025, p. 218)디지털 접수 시스템의 설계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이 있다. 내담자가 폼을 작성하다 중간에 나가면 어떻게 되는가? 자동 저장 기능이 없으면,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야 한다.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큰 좌절이 될 수 있다. “또 처음부터 해야 하다니”라는 생각은 포기로 이어진다. 자동 저장과 이어 쓰기 기능은 기술적으로는 작은 디테일이지만, 사용자 경험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

앨리슨 다시
정신건강 도구의 진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접근성에 있다. 새벽 3시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24시간 안에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변화다.
— Darcy (2017)이번 주 읽기의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다. 디지털 접수 시스템은 상담의 행정적 부담을 줄여서 상담사가 경청과 공감에 집중하도록 돕는 도구다. PHQ-9, GAD-7, C-SSRS 같은 표준화된 선별 도구를 디지털로 통합하면 자동 채점과 위기 감지가 가능해진다. 조건부 분기는 내담자에게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인 분기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술의 목적은 하나다 — 내담자가 안전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문을 여는 것이다.
위기 플래그 시스템: 위험 신호를 자동으로 감지하기
위기 플래그(crisis flag)란, 접수 과정에서 수집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자살·자해·타해 위험 같은 안전 문제를 감지하고 상담사에게 알리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하면 연기 감지기와 같다. 연기 감지기는 불이 난 걸 확정하는 게 아니라, “연기가 감지되었으니 확인하세요”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위기 플래그도 마찬가지다. “이 내담자에게 위험 신호가 있으니 확인하세요”라고 상담사에게 알린다. 최종 판단은 항상 인간 전문가가 한다.
Gainer(2025)는 이 시스템의 설계 원칙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민감도 우선 — 괜히 걱정한 것(위양성)은 괜찮지만, 위험을 놓치는 것(위음성)은 안 된다. 과잉 감지를 감수하더라도 놓치지 않는 쪽으로 설계한다. 화재 경보가 가끔 오작동하는 건 감수할 수 있지만, 진짜 불이 났는데 울리지 않는 건 재앙이다. 둘째, 즉각적 연계 — 플래그가 뜨면 즉시 인간 전문가에게 알린다. AI가 위기의 최종 판단자가 되면 안 된다. 셋째, 투명한 고지 — 내담자에게 “안전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알린다. 비밀스러운 감시가 아니라 투명한 보호 장치여야 한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전문가에게 알림이 갑니다”라고 사전에 안내하는 것이다.

세네카 R. 게이너
위기 감지 시스템은 '기술이 증강하되 대체하지 않는다(augment, don't replace)'는 원칙의 가장 극적인 적용 사례다. 자동 플래그는 상담사의 임상적 판단을 돕는 도구이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다.
— Gainer (2025, p. 224)구체적으로 위기 플래그는 세 단계로 나뉜다. “주의” (caution): PHQ-9 총점 15점 이상이거나 GAD-7 총점 15점 이상일 때. 상담사 대시보드에 노란 플래그가 뜬다. 이 수준에서는 즉각적 개입보다는 상담사가 내담자와 만날 때 해당 영역을 우선 탐색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고”(warning): PHQ-9 9번 문항에서 1점 이상이거나 주호소 서술에 자해·자살 관련 단어가 감지될 때. 상담사에게 즉시 알림이 가고, 내담자에게는 자살예방상담전화(1393)와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 안내가 표시된다. 이 단계에서 주의할 점은, 한국어의 특성상 “죽겠다”,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 반드시 자살 생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 때문에 죽겠어요”는 일상적 과장일 수 있다. 그래서 키워드 감지만으로 위기를 확정하지 않고, 상담사에게 “확인이 필요합니다”라는 형태로 전달한다.
“위기”(crisis): PHQ-9 9번 문항에서 3점(거의 매일)이거나 C-SSRS 3단계 이상일 때. 자동 안전 계획이 즉시 뜨고 상담사에게 긴급 알림이 간다. 이 수준에서는 내담자에게 즉시 위기 지원 안내가 표시되며,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시면 119에 연락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자살예방상담전화 번호가 화면에 고정된다.

켈리 포스너
자살 위험 평가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C-SSRS는 누가 물어도 같은 기준으로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게 만든 도구다. 이 일관성이 디지털 시스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 Posner et al. (2011)위기 플래그 시스템을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실무적 문제가 있다. 상담 기관이 24시간 운영되지 않는 경우, 야간이나 주말에 위기 플래그가 뜨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는 자동 안전 계획과 위기 상담 전화번호 안내가 1차 대응이 되고, 월요일 아침에 상담사가 출근했을 때 즉시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알림을 유지해야 한다. 이처럼 위기 플래그 시스템은 기술적 설계를 넘어서 운영 프로토콜까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주호소 텍스트의 AI 분석
내담자가 접수 폼에 자유롭게 쓴 주호소(가장 힘든 문제)는 구조화되지 않은 자연어 데이터다. “요즘 잠을 잘 수 없고, 논문 때문에 불안하고, 지도교수와 관계가 힘들다”라는 문장에는 여러 주제가 섞여 있다. AI가 이 텍스트를 분석해서 핵심 키워드를 뽑아주면 상담사의 초기 면접 준비에 도움이 된다. 위 문장에서 AI는 “수면 문제”, “학업 스트레스”, “대인관계 갈등”을 추출할 수 있다.
AI의 주호소 분석이 유용한 이유는, 상담사가 15명의 내담자 접수서를 훑어봐야 할 때 시간을 절약해주기 때문이다. 상담사 페르소나 “이현우 (38세)”의 불편한 점이 “접수 서류를 읽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였다. AI가 각 내담자의 주호소를 3개의 키워드로 요약해주면, 상담사는 대시보드에서 한눈에 어떤 내담자를 우선 만나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AI의 분류 결과를 “진단”이 아니라 “참고”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죽겠다”라는 한국어 표현이 정말 자살 생각인지, 일상적 과장인지는 맥락에 따라 다르다. AI는 이 구분을 정확히 못 하므로, 위기 관련 단어가 감지되면 일단 플래그를 올리고 상담사가 맥락을 판단하는 구조가 안전하다. 이것이 “민감도 우선” 원칙의 구체적 적용이다.
AI 주호소 분석의 한계도 알아두어야 한다. AI는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행간의 의미를 읽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별로 힘든 건 없는데 그냥 한번 와봤어요”라고 쓴 내담자가 실제로는 큰 고통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있다. 상담에서는 이것을 “외현적 호소(manifest complaint)”와 “잠재적 호소(latent complaint)”의 차이라고 부른다. AI는 외현적 호소만 분석할 수 있고, 잠재적 호소는 상담사의 임상적 감각으로만 포착된다.
접수 폼의 UX 설계: 울고 있는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
Alison Darcy가 Woebot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쓴 건 “사용자가 힘든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가”였다. 상담 접수 폼도 마찬가지다.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있는 사람은 집중력, 의사결정 능력, 정보 처리 속도가 평소보다 낮다. 교과서를 30분 읽을 집중력이 없는 사람에게 30개 문항의 폼을 한 번에 작성하라고 하면, 중간에 포기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상담 접수 폼은 일반 웹 폼보다 더 단순하고, 더 명확하고, 더 관대해야 한다.
구체적 원칙은 네 가지다. 첫째, 한 번에 3~5개만 — 모든 질문을 한 화면에 때려넣지 말고, 섹션별로 나누어 조금씩 보여준다. 진행률 표시줄로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려준다. 둘째,자동 저장 — 중간에 그만두고 나중에 이어서 쓸 수 있게 한다. 긴 폼을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은 내담자에게 과한 부담이다. 셋째, 안전 문구 — 민감한 질문 앞에 “이 질문은 당신의 안전을 위해 묻는 것입니다”, “편하신 만큼만 답변해 주세요” 같은 안내를 넣는다. 넷째, 접근성 — 글씨 크기, 색상 대비, 스크린 리더 호환성을 확보해서 장애가 있는 내담자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앨리슨 다시
정신건강 도구의 진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접근성에 있다. 새벽 3시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24시간 안에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변화다.
— Darcy (2017)디지털 접수의 윤리: 개인정보와 비밀 보장
디지털 접수 시스템은 민감한 건강 정보를 수집하므로 엄격한 윤리적·법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Gainer(2025)는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사전 동의 — 데이터를 왜 모으고, 얼마나 보관하고, 누가 볼 수 있는지 명확히 알려주고 동의를 받는다. AI 분석이 적용되면 그것도 알려야 한다. “귀하의 응답은 AI를 통해 예비 분석될 수 있으며, 최종 판단은 담당 상담사가 합니다” 같은 안내가 필요하다.
둘째, 최소 수집 — 치료에 꼭 필요한 정보만 모은다. “이 정보가 없으면 상담에 지장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항목을 결정한다. 셋째, 비밀 보장의 한계 — 자해·타해 위험이 감지되면 비밀 보장이 제한될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이것은 상담 윤리의 기본 원칙이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더 명시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넷째, 데이터 보안 — 전송과 저장 시 암호화하고, 접근 권한을 상담사·관리자·시스템 관리자별로 나눈다. 접수 폼의 원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 원칙이다.

세네카 R. 게이너
디지털 상담 플랫폼의 윤리적 설계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사전 동의, 최소 수집, 투명한 고지, 데이터 보안 — 이 네 기둥 중 하나라도 빠지면 내담자의 신뢰는 무너진다.
— Gainer (2025, p. 230)이번 강의의 핵심을 종합하면, 디지털 접수 시스템은 세 가지 층위로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기능층 — PHQ-9/GAD-7 자동 채점, 조건부 분기, 위기 플래그가 기술적으로 작동하는 것. 둘째, 치료층 — 안전 문구, 정서적 배려, 접근성이 상담적 맥락에 맞게 설계되는 것. 셋째, 윤리층 — 사전 동의, 비밀 보장, 데이터 보안이 법적·윤리적 기준을 충족하는 것. 세 층위가 모두 갖춰져야 내담자에게 안전한 디지털 접수 시스템이 된다.
Replit Agent로 접수 시스템 만들기
이번 주에는 Replit Agent를 사용해서 실제로 작동하는 상담 접수 시스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AI에게 한국어로 지시하면 코드를 자동으로 써주지만, 상담 맥락에 맞는 세부 사항은 직접 확인하고 고쳐야 한다. 코딩을 전혀 모르는 학생도 괜찮다. AI가 코드를 써주니까, 우리가 할 일은 “뭘 만들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지시하고, 결과가 상담 전문가의 기준에 맞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여섯 단계로 진행한다.
1단계: 기본 접수 폼. Replit에서 새 프로젝트를 만들고 “상담 접수 면접 폼을 만들어줘. 이름, 나이, 성별, 연락처, 상담 경험 여부, 주호소 자유 서술란 포함”이라고 입력한다. AI가 만든 폼을 확인하고, 상담에 안 맞는 부분을 고친다. 예를 들어 “성별” 선택지에 “남/여”만 있으면 “기타/답변하지 않음”을 추가하자. 이것이Gainer(2025)가 말한 “취약성 고려”의 구체적 적용이다. 성별 다양성을 반영하지 않는 폼은 해당 내담자에게 “여기는 나를 위한 곳이 아니구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2단계: PHQ-9 설문 추가. “PHQ-9 우울 설문 9문항을 추가해줘. 각 문항 0(전혀 아님)~3(거의 매일) 선택지”라고 입력한다. 한국어 표준 번역본을 사용하고, 자동 채점이 맞는지 확인한다 — 총점 0~4(최소), 5~9(경도), 10~14(중등도), 15~19(중등도~중증), 20~27(중증). AI가 문항 번역을 임의로 만들 수 있으므로, 반드시 표준 한국어 번역본과 대조해야 한다. 심리 검사는 번역이 바뀌면 타당도가 훼손된다.
3단계: GAD-7 설문 추가. 같은 방식으로 불안 설문 7문항을 추가한다. 총점 0~21점, 절단점 10점. PHQ-9과 함께 쓰면 우울·불안 공존 패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두 설문의 결과를 나란히 보여주는 결과 화면을 설계하면, 상담사가 내담자의 전반적 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쿠르트 크뢴케
PHQ-9은 2분 안에 실시할 수 있으면서도 민감도 88%, 특이도 88%를 달성한다. 간결함과 정확성의 균형은 선별 도구 설계의 핵심이다.
— Kroenke et al. (2001)4단계: 위기 플래그 구현. “PHQ-9 9번 문항이 1점 이상이면 위기 알림을 띄워줘”라고 입력한다. 알림에는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 응급 시 119를 안내한다. 문구는 “당신의 안전이 저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같이 따뜻하고 비판단적으로 쓴다. 여기서 AI가 만든 문구를 그대로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AI가 “자살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라고 직설적으로 쓸 수 있는데, 이런 표현은 내담자에게 충격이 될 수 있다. 상담적 맥락에서 적절한 표현으로 수정해야 한다.
5단계: 결과 페이지. 접수 완료 후 우울 점수, 불안 점수, 위기 수준, 권장 조치를 요약하는 페이지를 만든다. 내담자에게는 간단한 요약과 다음 단계를, 상담사에게는 상세 점수와 위기 플래그 정보를 보여준다. 두 화면을 분리하는 이유가 있다. 내담자에게 “귀하의 우울 점수는 18점(중증)입니다”라고 보여주는 것은 치료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다. 내담자 화면에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도가 적절하다.
6단계: 조건부 분기(시간 되면). 상담 경험 여부에 따라 후속 질문이 달라지게 하거나, PHQ-9 9번 응답에 따라 C-SSRS 간이 질문을 추가하는 등의 분기를 구현한다. 이것은 지난주 읽기에서 다룬 “조건부 분기”의 실제 구현이다. 내담자의 답에 따라 질문 흐름이 달라지면, 내담자는 “이 시스템이 내 답을 듣고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켈리 포스너
자살 위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계적이고 일관된 질문이다. C-SSRS는 누가 물어도 같은 기준으로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게 만든 도구다.
— Posner et al. (2011)Replit Agent 활용 팁
Replit Agent에게 지시할 때, 한 번에 모든 것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접수 폼, PHQ-9, GAD-7, 위기 플래그, 결과 페이지를 다 만들어줘”라고 하면, AI가 혼란에 빠져서 어중간한 결과를 낸다. 한 단계씩 진행하고, 각 단계의 결과를 확인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마치 상담에서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다루려 하면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AI가 만든 코드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점수 계산이 맞는가”이다. AI가 PHQ-9의 채점 범위를 잘못 설정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5점을 “경도”가 아니라 “중등도”로 분류한다거나, 절단점을 10점이 아니라 15점으로 설정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심리검사의 채점 기준은 임상 연구에 의해 확립된 것이므로, AI의 임의적 수정을 허용하면 안 된다.
프로토타입 테스트: 서로의 앱을 검토하기
접수 시스템을 만든 후에는 팀원끼리 교차 테스트를 한다. 다른 팀이 만든 접수 폼을 직접 작성해보고, 상담사 관점과 내담자 관점에서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교차 테스트는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사용성 테스트(usability test)”라 부르는 과정의 간이 버전이다.
테스트할 때 확인할 항목은 네 가지다. (1) 위기 플래그가 올바르게 작동하는가? PHQ-9 9번에 2점을 넣었을 때 위기 안내가 뜨는가? (2) 안전 문구가 적절한가? 민감한 질문 앞에 안내가 있는가? (3) 결과 페이지가 내담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인가? 점수가 너무 직접적으로 표시되어 내담자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가? (4) 전체적인 톤이 따뜻하고 비판단적인가? “이 폼을 울면서 작성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가?”를 상상해보자.

세네카 R. 게이너
디지털 접수 시스템의 성공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내담자가 '여기서는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안전감은 코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 Gainer (2025, p. 235)참고 문헌
- Gainer, S. R. (2025). The counseling singularity: AI integration in therapeutic practice. Professional Publishing.
- Kroenke, K., Spitzer, R. L., & Williams, J. B. (2001). The PHQ-9: Validity of a brief depression severity measure. Journal of General Internal Medicine, 16(9), 606–613.
- Krug, S. (2014). Don't make me think, revisited (3rd ed.). New Ri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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