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기도회 간증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

2025년 11월 17일 | 김혜진

고린도후서 1:3-4

오프닝

안녕하세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17일차 다니엘기도회 간증을 나누게 된 김혜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작년까지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 있는 IT회사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족들과 한국에 오게 됐고요, 이렇게 다니엘 기도회에서 간증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실리콘밸리나 제 일과 관련된 강연은 많이 했었는데요, 올 해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제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저의 상처들, 제 삶의 어두운 얘기들을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하는게 큰 부담이었어요. 그리고 제 삶을 보면 잘 지내다가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회복하고 또 떨어지고. 어디 가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기엔 이런 약한 모습들이 많아서, 이 자리에 설 자격이 되나? 고민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기도회 원고 마감 이틀 전에 하나님이 이런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빛으로 나아가라'. 제 모습 그대로 숨기지 말고 빛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잘 전하는 도구로서 이 자리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모습도 상관 없다고 해 주셨어요. 완벽한 삶의 모습, 좋은 신앙인의 모습 이런 거 보여 주려고 애쓰지 말고, 여전히 넘어지고 헤매는 제 삶 그대로 솔직하게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제가 간증이 서툴러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만 잘 전달되도록 같이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간증

어린 시절

오늘은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라는 제목과 고린도후서 1:3-4절 본문 말씀을 가지고 간증을 준비했는데요, 죽음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제 인생을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시켜 주셨는지, 그리고 망가졌던 저의 자아상을 어떻게 바꿔가셨는지 그 과정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 한 번 더 같이 읽고 시작해보겠습니다.

고후 1:3-4절 본문 (화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아멘.

이 본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나와있죠?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또 그 위로로 다른 사람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까? 지금은 저도 '우리 하나님 그런 분이시지'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지만, 이 말씀을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이고 믿기까지 수 십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하나님과 부모님을 같은 존재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상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상처가 많으신 분들이어서요, 마음은 애들을 잘 키워보고 싶은데 감정을 올바르게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분노, 우울증, 폭언, 폭력에 노출되다보니까 항상 긴장되고 무서웠고 자연스럽게 하나님 아버지를 이런 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저를 언제나 지켜보시다가 마음에 안들면 벌하시고 쓸어버리고 내치시는 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도 언제든 지옥불에 던져버리시는 분 나 같이 쓸모 없고, 벌레만도 못하고, 아무 소망이 없는 죄인을 그나마 마음이 넓으셔서 봐주시는 분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리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인데도 내가 고통받고 있을 때 그냥 지켜만 보시거나, '어디 네가 그 안에서도 나한테 감사할 수 있나 보자'하고 나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분

너무 슬프게도 이런 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라는 단어는 입 밖에 내기도 싫었고, 세상에 의지할 건 하나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싶다가도 미워서 도망치고 싶고 이런 상반된 감정들로 늘 괴로웠습니다. 존재 자체로 사랑 받는 경험을 해 본적이 없어서,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아무리 들어도 저와 상관 없는 먼 얘기로만 들렸고요, 오히려 종잡을 수 없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삶이 저한테 너무 무거워서 얼굴이 아이 얼굴인데도 항상 주눅들어 있고 표정도 굉장히 어두웠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매일 매일 밤마다 숨 죽여 울면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내일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실 수 있다면 저를 빨리 하늘로 데려가주세요. 내일 아침 태양을 보지 않게 해 주세요.''

하지만 제가 기도했던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 어리니까 가출할 수도 없고, 힘이 없어서 반항도 못하고, 밖으로 어떤 것도 표출할 수가 없으니까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심리학 책들을 보니까 예를 들어 부모가 싸우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이런 식으로 집에 불화가 생기면 아이들은 그게 자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대요. 아이들 입장에선 이 상황을 이해해야 살 수 있으니까 자기 나름의 이해력으로 그렇게 논리를 만들어 나가는거죠. 마찬가지로 어릴 때의 저도 부모님의 부정적인 감정과 폭력, 폭언, 학대의 상황들이 다 제 책임인 것 같아서 '나는 가치 없는 아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 나 때문이다.'하면서 큰 죄책감을 갖게 됐습니다. 다 제 책임이니까 그럼 이걸 어떻게든 바꿔야 하는데, 아이니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잖아요. 그래서 자기 혐오, 자기 학대가 심해졌어요. 제 자신이 너무 싫어서 거울로도 보기 싫었고, 항상 불안하고, 눈치보고, 긴장하고, 허둥지둥하고, 제가 싫어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제 자신을 파괴하려고 손부터 얼굴, 피부를 막 긁고 뜯고 꺾어서 상처를 내고, 지금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안정적인 애착 형성이 안 되니까 인형이나 물건, 키우는 반려견에 깊은 애착을 갖게 됐습니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시절이었어요.

제가 숨쉴 수 있는 곳이 유일하게 학교였는데요, 집에서 빨리 탈출하려면 학생으로서는 공부 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공부가 저에게 구원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제가 뭘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데,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잘 나오고, 선생님들도 제가 혼자 막 애쓰고 있으면 교사용 문제집들도 챙겨 주시고, 친구들한테 잘 해주면 우정도 생기고, 이렇게 제가 뭔가 했을 때 상황이 나아지는 걸 보면서 거기서만큼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밤마다 울면서 죽고 싶어하는 저와, 학교에서의 밝고 모범적인 두 자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럴 수록 제 어두운 내면과 억눌린 상처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꼭꼭 숨기고 더 견고한 마음의 장벽을 쌓고 살게 됐습니다. 그래야 제가 살 수 있었던 거에요.

연애와 결혼

20살 때까지 그렇게 불안하고 위태롭게 이중 생활을 하다가 대학을 가면서 드디어 집을 탈출했습니다. 저는 가족과 떨어지면 제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항상 긴장하고 있던 상태가 좀 풀리니까 억누르고만 있던 감정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거에요. 우울증이 더 심해졌고, 자존감도 낮았고, 깊은 상처들이 일상 생활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속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밖에서는 너무 멀쩡하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공부하고, 돈도 열심히 벌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다가 집에 들어와서 현관문을 딱 닫는 순간부터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면서 몇 시간씩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옛날부터 안 들키려고 숨죽여 울어버릇 해서 소리도 못내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냥 현관 앞에서 펑펑 울었어요. 어릴 때 건강한 양육 환경에서 사랑 받고 내면이 성장하면 감정도 건강하게 다룰 줄 알고 성숙해지는데, 저는 탈출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고 매일 겨우겨우 살다보니까 어른으로 성장을 못한거에요. 그래서 시야도 좁고, 세상도 잘 모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없으니까 이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인생이 매일 산 넘어 산인거에요. 너무 지치고 고달프고 그냥 다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하나님께 저 좀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와중에 연애도 조금씩 하게 됐는데, 제가 안정적인 애착이나 신뢰 관계를 쌓아본 적이 없으니까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냥 적당히 아는 관계에서는 잠깐 만나니까 제일 좋은 모습일 때만 보고, 포장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세상에서 경험하는 가장 가까운 관계가 가족인데, 이제는 남자친구가 저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니까 여태까지 경험한 가족 관계에서의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좋은 친구들이 헌신적으로 사랑을 부어주는데도 그걸 믿지 못하고 계속 시험하고, 상처주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었고요, 그러다가 헤어지면 항상 어릴 때 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나는거에요. '세상에 누가 너 같은 X를 좋아하겠냐? 이 ㅂㅅ같은 XX야' 이런 말들이 생각나면서 '역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는 부정적인 믿음이 더 굳어졌어요. 그 때 제가 사랑, 신뢰, 애착, 자존감 이런 정서적 베이스가 바닥이어서, 몸만 큰 어린아이가 연애 흉내만 내는 상황이었던거에요.

그런데 오랫동안 아무런 응답 없으셨던 하나님이 그 때부터 제 인생에 역사하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저희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사귀게 됐는데, 제가 예전 연애 패턴에 계속 갇혀있으면 또 헤어질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쐐기를 박고 시작하셨어요. 남편도 저도 평범하게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신비한 체험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연애 시작하자마자 남편한테

"너 예전에 중학교 때 수련회에서 배우자 기도한 적 있잖아. 그 배우자 내가 준비했어. 그게 혜진이야. 그리고 네가 좋은 배우자 준비해 주시면 평생 하나님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약속했지? 그러니까 이제 그 약속 지켜."

이렇게 기도 중에 얘기를 하신거에요. 그래서 남편이 "아니 하나님, 저 기억도 잘 안나는데, 뜨거운 수련회 분위기에 휩쓸려서 했던 기도를 갑자기 가져와서 이러시면 어떡해요." 그런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또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내가 준비한 배우자 혜진이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라." 그런데 제가 모태 신앙이니까 이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남편이 이 상황이 이해도 안되는데 일단 저한테 전화를 걸어서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셔서, 그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이렇게 전하긴 했는데, 뜬금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뭐래. 다 아는 얘기를 왜 갑자기.." 이러면서 건성으로 듣고, 남편은 머쓱해져서 다시 전화 끊고 기도를 한 거예요.

"하나님 혜진이 이미 복음 알고 있다는데요." 그랬더니 "복음이 뭐니?" 이렇게 물어보시더래요. 그래서 또 똑같이 대답한거죠. "예수님이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거잖아요."라고 얘기를 대답을 하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혜진이를 죽기까지 사랑하고, 혜진이를 위해서 죽어." 이렇게 얘기를 하셨대요.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을 남편을 통해 경험하게 하셔서, 저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런 관계 속에 살게 하시는 게 저한테 복음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르고 그냥 "아, 네. 알겠습니다. 저 많이 사랑할게요."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에스겔 317

그리고 나서도 연애 기간 동안 또 정말 어려운 시기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이 신기한 일들을 계속 보여주셨어요. 말씀드렸듯이 저나 남편이나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 얼마나 급하셨는지 하나님이 막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하루는 남편 친구가, 별로 친하지도 않고 따로 연락도 전혀 안하는 그냥 교회 친구였는데, 갑자기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나한테 '겔 317'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나도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보자"라고 한 거예요. 서로 안 친한 사이니까 저희 연애 얘기도 전혀 모르는데 얼떨결에 저와 남편, 그리고 남편 친구 세 사람이 만나서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이미지가 '겔317'인데 콜론이 없어서 일단 두 성경 구절 - 에스겔서 3장 17절과 31장 7절 -을 다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3장 17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그걸 읽자마자,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연애 초에 하나님이 남편에게 하셨던 말씀, '내가 배우자 준비해주면 네가 하나님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약속했지?' 이게 딱 생각나면서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그 말씀을 듣고 몇 달 후에 어느 날 남편이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대요. 혜진이가 어렸을 때도 엄마를 통해 계속 얘기하셨는데 이게 전혀 전달이 안돼서 너무 답답했다고. 저희 가족이 항상 교회는 다니고는 있었지만 믿음도 약하고 다 상처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 말씀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남편한테 '이제 네가 대신 이 얘기 좀 전해줘' 하면서 저희 부모님께 하실 말씀을 불러주시고 남편이 그대로 써서 이메일을 보내게 하셨어요. 그 편지에 나오는 저희 부모님의 옛날 얘기나 자세한 사건들은 남편도 전혀 모르는 얘기들이라 하나님이 불러주셨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남편을 저희 집의 파수꾼으로 세워주시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읽은 에스겔서 31장 7절은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였는데, 저랑 남편 둘 다 동시에 이건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걸 알았어요.

"혜진아, 너는 스스로를 혐오하고, 저주하고, 가치없고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내가 큰 물가에 심은 아름다운 나무란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에 좋은 말씀을 보면 저와 상관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나를 향한 말씀'으로 다가왔고, 그 때부터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라는 정체성이 제 마음속에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유학 생활

그 후에 결혼을 하고 바로 남편이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어서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요, 이 때부터 우여곡절 많은 저의 커리어 여정이 시작됩니다. 제가 한국에서 영어선생님이 되려고 교육학이랑 영문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 처음 갔더니 말이 한 마디도 안나와요. 예를 들어서 'DMV에서 면허증 받아야 되고, Co-op에 가서 뭐 사오세요' 이렇게 거기서 직접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용어들이나 사회 시스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니까 잘 들리지도 않았고, 들려도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지자체에서 발급하는 서류 가지고 교보 앞에서 만나요.' 이렇게 얘기하는거죠. 특히 전화 영어는 입 모양도 안 보이니까 더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이런 저한테 누가 영어를 배우겠어요. 그래서 영어 선생님의 꿈은 멀리 날아가버렸고요, 그럼 이제 나 뭐 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일단 여기서도 제가 할 수 있는게 공부 밖에 없어서 문헌 정보학, 생물학, 간호학, 소프트웨어 개발자 과정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몇 년 동안 계속 공부를 하게 됩니다.

새로운 공부도 하고, 교회에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이제 신혼생활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제 삶의 문제는 사라지지가 않았어요. 이제 저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제가 평생을 들었던 그 파괴적 메시지와 어그러진 정체성이 너무 단단히 내면화 돼서 제 안에서 계속 재생산 되고 있더라고요. 어릴 때 그 고통스러웠던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평생을 노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제 부정적인 자아상을 확인해주는 환경에 들어가 있으면 안심이 되는거에요. 그래서 조금 행복해지려고 하고 상황이 좋아질 것 같으면, '너 같은 사람은 이런 삶을 살 자격이 없어.'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 좋은 상황이 왠지 제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불안했어요. 그래서 예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밖에서는 멀쩡하게 공부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자기 혐오를 계속 하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죽을 수 있을까 그런 안좋은 생각을 계속 하고 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정신 병원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자살 시도를 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어요. 각 병동마다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아서 같이 치료를 하는데, 저희 병동에는 저랑 비슷하게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상처로 다 곪아 있고,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만 외국인이었고, 영어도 서툴러서 '내가 여기서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순간부터 환자들도, 의료진들도 다 정말 따뜻한거에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랑 치료 프로그램들을 같이 했는데, 아무도 저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말 못한다고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와서 손 잡아주고 "너 정말 힘들었겠다" 하면서 안아주더라고요. 그 때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제 숨겨놨던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일단 다른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용기는 생겼는데, 20년 넘게 견고하게 만든 장벽 안에 다 밀어놔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 해도 너무 무섭고 막막했고요, 오랫동안 폭언, 욕들을 다 내면화해서 '이 모든 게 '다 내 탓이야' 하고 눌러만 놨으니까 말을 시작했을 땐 아무말 대잔치가 되더라고요. 게다가 어떤 사건들은 말하면서 그 당시의 저로 돌아가서 감정이 폭발하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온몸이 떨리고, 마음이 막 요동쳤어요. 그 때, 제 주위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데, 그냥 아무런 판단하지 않고, "나도 그 마음 알아. 너 얼마나 많이 힘들었니" 라고 바라보는 그 순간 제 주위의 공기가 따뜻해지고 마음에 안정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그 때 제 부족한 존재 자체로, 과거의 저까지도 품어주는 환경에 있으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난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렇게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고 또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왜 여기 있지?' 하는 의문이 드는 거에요. 그런데 그룹 상담하면서 보니까 다들 폭언과 폭력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는데, 그 고통을 밖으로 터뜨리지 못하고, 혼자 견디다 못해 무너진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랑 똑같이, 밖에서 작은 문제가 생겨도 엄청 크게 자책하고 갑자기 모든 게 다 망한 것 같고 절망하면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거죠. 다들 누구한테 싫은 소리 한 번을 못하고 (보통은 그러면 후폭풍이 크니까요, 맞든지 더 욕을 먹든지), 또 정말 열심히 살고 (어디서라도 인정 받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모범생이고, 일에서 성공하고, 훌륭한 엄마인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이 상처를 어쩔 줄 몰라서 정신적으로 무너진거에요. 같이 얘기하면서 공감이 돼서 엄청 울었어요.

그렇게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며 자꾸 표현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까, 어떤 것들은 트라우마 반응이 훨씬 줄어든 채로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 때 상담선생님들하고 연습했던 게, 그나마 가벼운 상처들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면, 더 깊은 것들도 조심스럽게 꺼내보고요. 이런 어둠 속에 있던 것들을 밖으로 꺼내면 의외로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로 표현이 됐을 때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걸 직면하고, 공감도 받고, 이해해 보는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퇴원 후에도 남편, 상담사 선생님, 믿을 만한 동역자들과 꾸준히 얘기하면서 프로세스했고, 15년 째 계속 도움을 받으면서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이런 상태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하나님도 믿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온전히 위로 받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서서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엄마로 준비되는 과정

제 삶이 조금씩 나아지니까, 아이에 대한 생각도 생기더라고요. 그 전에는 내 인생도 이렇게 불행한데 아이까지 낳아서 그 아이들도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회복이 되니까 미래를 꿈꾸게 되고, 기대가 되고, 아이들과도 이 행복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때부터 저를 엄마로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결혼 4년 만에 드디어 첫 임신을 했어요. 태아 초음파도 보고 심장 소리도 듣고 이름은 뭘로 지을지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1주 검진을 갔는데 아이 심장이 뛰지 않았고, 계류 유산 판정을 받게 됐어요. 믿을 수가 없었고, 아이를 보낸 후에도 몇 주 동안 현실감이 없어서 멍하게 보냈었어요. 그 때는 하나님이 왜 아이를 데려가셨는지 이해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빨리 잊기 위해서 다시 공부에 매달리며 극복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저는 활발히 일도 하고 있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상처들이 많이 있었지만 꾸준히 회복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건강한 아들을 품고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22주를 지나고 있던 12월 31일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몸이 이미 출산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단 입원을 하고, 아무 문제 없이 아이의 심장 박동이 규칙적으로 울려퍼지는 병실에서, 의사가 여러 논문을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수술해서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일이었고, 두 번째는 진통이 멈추면 최대한 뱃속에서 유지하다가 24주가 넘었을 때 집중치료실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원칙상 24주가 되지 않은 태아는 집중 치료실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처럼 출산이 진행되면 아이는 어차피 살 수가 없고, 혹시 24주까지 버티더라도 장애 확률이 90%가 넘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태아가 양수 없이 8주 정도까지 살 수 있는데, 한 주 한 주 지날 수록 장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드니까 최대한 오래 뱃속에서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이 심장이 저렇게 건강하게 뛰고 있는데 우리가 마음대로 이 생명을 거두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가 태중에서 오래 살 수 있다면 제가 몇 주를 병원에 누워있더라도 괜찮으니 지켜주세요. 그리고 아이가 너무 일찍 태어나서 장애가 생긴다고 해도 저희가 감당하며 살겠습니다. 살아만 있게 해주세요." 배에 손을 얹고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몇 시간 동안 지속되던 진통이 어느 순간 멈췄습니다.

그리고서 그 날 몇 시간 동안 병원에서 저희 부부는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나눴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으로 이제 제가 성인으로서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엄마로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죽을 힘을 다해 살아냈고, 좋은 성과를 내며 살았는데, 내 아이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요. 제가 아무 고난 없이 쉽게 엄마가 되었다면 아이에게 닿을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폭력인지도 모르고 상처 주는 일도 많이 있었을 거라는 걸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그냥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이 소중한 존재를 선물로 받았으니 내가 엄마로 바로 서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습니다. 만약 이렇게까지 충격이 없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제가 배웠던 그대로 부모님처럼 아이를 키웠을 거라는 생각에, 미리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급격하게 진통이 시작돼서 1월 1일에 저희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기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했고, 귓바퀴, 눈썹, 보드라운 머리털, 정교한 손발톱까지 다 있는 작은 신생아의 모습이었습니다. 심장도 초음파에서 듣던 것처럼 규칙적으로 뛰고 몸도 따뜻하며 편안한 표정이었어요. 저는 아기의 모든 곳을 쓰다듬어 주면서 뽀뽀하고,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얘기해 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줬습니다. 약 2시간에 걸쳐 아기의 심장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 품에 안고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해줬어요.

"아가야, 살아서 나와 줘서, 그리고 하늘로 갈 때까지 엄마 품에서 잘 버텨줘서 고마워. 하늘에서 엄마 아빠를 지켜봐줘. 우리에게 세 번째 아이가 언제 찾아올지 알 수는 없겠지만 부모로서 더 준비되어 있을게. 사랑해."

퇴원을 하고 나서 저희의 꿈과 미래와 인생을 걸었던, 이제는 한 줌의 재가 된 아이를 자유롭게 날아가라고 샌프란시스코 바다로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나서 병원에서 한 모임을 소개해줬는데요, 저희처럼 임신 중기나 후기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위해서 지역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저희 포함 두 커플이 새로 왔고, 자원봉사자 8커플까지 10커플 정도가 돌아가며 소개를 하는데 저희가 먼저 "저희는 22주에 아이를 잃었고요..." 어쩌구저쩌구 울면서 얘기를 했더니, 너무너무 따뜻한 미소와 포옹을 해주면서 다들 저희를 위로해줬어요. 그리고 나서 다른 커플들이 얘기를 시작하는데, "저희는 35주에 아이가 나왔는데 며칠 살다 하늘로 갔고요." 이러고, 또 다른 커플은 "저희는 40주에 사산으로 쌍둥이들을 잃었고요."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얘기를 듣다가 '아, 내가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싶고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지면서 제가 막 미안해했더니 그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야, 덜 힘들고 덜 충격적인 유산이란 건 없어. 네가 겪은 일 엄청 힘든 일이야.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너 자신을 아껴줘야 해. 그래야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이거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거 잊지마."

사실 아이를 보낸 후 부터 제 마음속에 부정적인 메시지가 계속 돌고 있었거든요.

"네가 몸 무리해서 이렇게 된거야." "이런 신호가 있었을 때 미리 알아챘어야지." 자책하고,

"애 둘 유산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힘들다고 유난이야."하면서 다그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자원봉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막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또 그 사람들이 "그 후에 우리 건강한 아이들 세 명 나왔어.", "쌍둥이 낳아서 건강하게 살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를 막 해주는 거예요. 그 때 다시 한 번,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위로해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임신 때부터는 제가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어서 임신 확인하자마자부터 병원에서 전문의들이 붙고 검사도 많이 하고 호르몬 주사도 매 주 맞고, 할 수 있는 모든 시술을 다 해서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고요, 그리고 또 3번의 유산을 더 겪은 뒤에 둘째를 낳았습니다.

매 번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이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고, 자녀 양육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하셨어요. 그리고 내 아이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단단히 새기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늘 가르쳐주시고 위로하시는데도, 아직도 헤매고 좌절할 때가 많은 부족한 인생인데요, 지금부터는 하나님이 이 부족한 인생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데 쓰셨는지 좀 나눠볼까 합니다.

  • ### 멘토링
  • 제가 간증 초반에 미국으로 가면서 선생님의 꿈이 엎어지고 제 커리어 여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는데요, 열심히 공부했지만 미국 학위도 없고, 원했던 목표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어떻게 보면 실패자의 여정을 살았었어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몇 번 기회가 되어서 나눴을 때 오히려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해 주셔서 꾸준히 강연과 멘토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멘토링 과정에서요, 하나님이 저의 우울증,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도 사용하시더라고요. 커리어 고민을 가지고 오신 많은 분들이 사실 자신이 가진 상처나 결핍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커리어나 외적인 문제로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삶의 본질적인 고민으로 이어지게 돼요. 단순히 문제 하나만 붙잡고 해결하려 그러면 뾰족한 수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삶으로 들어가서 내면의 이해와 회복이 먼저 일어날 때, 그런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저의 상처와 극복했던 과정들을 예시로 들면 더 와 닿아서 도움을 드릴 때 수월하더라고요. 만약 제가 별 고난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왔다면 해 드릴 수 있는 얘기가 한정적이었을텐데, 정말 상처도 많고 좌절도 많고 맨 땅에 헤딩하며 돌파해 나갔던 그 경험들이 오히려 다양한 분들께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작은 고난의 경험까지도 쓰시는 주님을 많이 경험합니다.

  • ### 임신, 출산, 유산
  • 제가 총 11년 동안 7번의 임신, 5번의 유산을 거치면서 정말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했거든요. 그랬더니 웬만한 임신 관련 문제들은 다 커버할 수 있게 돼서 주변 사람들을 도울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중기 유산 같은 경우에는 일반 출산 후의 증상이 똑같이 나타나거든요. 예를 들면 젖이 돌기 시작하는데, 먹을 아이가 없으니까 딱딱하게 굳어서 젖몸살이 심하게 나요, 그런데 이런 정보는 찾아봐도 잘 없어서 저도 몸의 변화에 너무 놀라고 병원다니고 엄청 고생하면서 알게 됐고요. 또 병원에서는 20주 이상의 태아들은 화장을 안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외부 화장터를 알아봐야 하는데 소아 화장은 해 주는 곳들이 많이 없어서 출산하고 바로 퇴원하자마자 그 추운 1월에 다 알아보고 다녔어요. 산후조리도 못하고 사망신고 하고, 화장하고, 산골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이런 식으로 난임, 계류유산, 임신 유지, 중기유산, 화학유산, 각종 시술들 제가 경험한 것들이 많아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연락주시면 구체적으로 조언을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임신 때 고위험 산모니까 엄청 많은 검사들을 했거든요. 그 때 유전자 검사도 했었는데, 마침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된거에요. 그래서 창업자들이랑 얘기하다가 '제가 지금 아이가 하나 있는데 사실 그 전에 두 번 유산을 하면서 이 회사의 서비스를 쓰게 됐고, 엄청 큰 도움을 받았다.' 그랬더니 그 창업자들도 다 저희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애들이 있어서 더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거에요. 그리고 나중에 그 회사에 합격을 해서 일을 하는데, 저에게 이 검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잖아요. 그래서 회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의 마음을 더 공감하면서 도울 수 있었습니다.

  • ### 새롭게 하소서
  • 그리고 제가 5월에 새롭게하소서에서, 아무에게도 못했던 저의 가족 얘기랑 하나님 은혜로 상처를 회복해 가는 과정을 나눴었어요. 그런데 원래는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한 건 전혀 아니었고, 실리콘밸리 IT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볍게 나누려고 한 거였어요.

    그런데 작가님이랑 통화 할 때 대화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흘러가는거에요. 부모님 얘기부터 너무 아픈 과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서, 그 날 앉은 자리에서 4시간을 통화하면서 작가님이랑 같이 막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화 마무리하면서 작가님이 '이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했는데 그 때부터 덜컥 겁이 나는 거에요.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할거라곤 전혀 생각을 안했고, 특히 가족 얘기나 저의 가장 바닥이었던 순간들을 나누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었기 때문에, 다시 연락해서 '작가님 죄송합니다, 저는 못할 것 같아요.'하고 거절도 하고, 거기 되게 훌륭하신 교역자님들, 연예인분들, 이름 들으면 다 아는 성공하신 분들이 나오는데, 저는 그냥 일반인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여기 나가는 거지? 하나님이 도대체 무슨 계획이신거지?' 혼란스럽고 정말 고민 많이 했었습니다. 그 때 생각하면, 하나님이 제가 손 쓸 새도 없이 막 일을 진행시키셔서, 정신차려보니까 방송 나와 있고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방송이 나가고 나서, 하나님이 저의 간증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기 원하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위로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랑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제가 일 관련해서 강연하러 가면 방송 보신 분들이 오셔서 자기 얘기 하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같이 펑펑 울고 위로 받았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IT업계에 종사하는 일반인이 이런 데서 간증한 경우가 없어서, IT업계 크리스천분들이 반가운 마음에 많이 봐주셨다고도 들었습니다. 사실 제 삶의 아주 일부분만 공개한거지만 저한테는 되게 큰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족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데 사용해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너무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제 인생의 모든 부분을 아주 싹싹 효율적으로 쓰시려고 그렇게 집약적인 고통을 허락하셨나 싶어서 좀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마무리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그 어두운 속마음을 밝은 빛 앞에 꺼내놓지 않았다면 그 후의 회복과, 커리어와, 엄마가 되는 일과, 사람들을 돕는 일들은 일어나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제가 꺼낼 용기를 가졌던 순간들을 보면 아무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줄 때였어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렵게 자기 얘기를 꺼냈는데 '야 맞다가 어디 부러져서 평생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니고, 너 지금 죽은 것도 아닌데 그정도 갖고 힘들었다고 하냐?' 이런다든가, '유산 다섯 번 한 거 가지고 힘들다고 하지마. 더 심한 사람도 있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앞으로 누구에게 자기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도 우리가 기도할 때, 네 고통이 크다 작다 판단하지 않으시고, 한없는 위로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이잖아요. 하나님 믿는 사람들만큼은 누군가 어려운 얘기 꺼냈을 때 비난하고 공격하기보다 품고 함께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가 전해집니다. 그 위로가 절망 끝에 있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어둠에서 빛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고, 회복과 치유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기 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상처를 마주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평생이 걸리는 회복 과정일 수 있지만, 늘 발 앞에 등불로 우리 길을 비추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지치지 말고 같이 걸어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작은 기도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매일 성실하게 나를 회복시키시며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저도 쓰러질 때 많이 있지만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로 불러주시고, 회복시키시고, 또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능히 돕게 하시는 하나님 바라보며 한 걸음씩 같이 걸어가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도 홀로 어두운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많은 상처가 삶에서 계속 악순환을 만들어내는데도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외롭게 견뎌내는 영혼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제가 같이 손 잡고 빛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빛 되신 주님께 가는 우리들을 만나주시고, 위로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빛으로 가져온 아픔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흘러 넘치는 큰 물가에서 가지가 길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쉼이 되고 위로가 되는 나무로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