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03/24 ~ 03/30

AI 사례개념화

AI가 제시하는 사례개념화를 상담사는 어떻게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는가?

이번 주 읽기: AI가 상담 수퍼비전을 도울 수 있을까?

사례개념화(case conceptualization)란, 내담자의 문제를 이론적 틀에 맞춰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치료 전략을 세우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 “이 사람이 왜, 지금, 이 문제를 겪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진단을 내리듯, 상담사도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뒤에 숨은 패턴을 읽어내야 한다. 다만 의학과 다른 점이 있다. 상담에서는 같은 증상이라도 어떤 이론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온다. 원래 이 과정은 숙련된 수퍼바이저(선배 상담사)의 지도 아래 진행된다.Gainer(2025)는 6장에서 AI가 이 과정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확장(augment)”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네카 R. 게이너

세네카 R. 게이너

AI 수퍼비전은 인간 수퍼바이저의 지혜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 초보 상담사가 한 명의 수퍼바이저에게만 의존할 때 생길 수 있는 '이론적 터널 비전' — 하나의 렌즈로만 세상을 보는 것 — 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Gainer (2025, p. 168)

AI 수퍼비전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관점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수퍼바이저는 자기가 훈련받은 이론에 따라 사례를 보는 경향이 있다. CBT 전문가는 자동적 사고와 인지 왜곡을 먼저 찾고, 정신역동 전문가는 전이와 방어기제를 먼저 본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사람이 10년간 CBT를 훈련받았으면, 모든 사례가 CBT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초보 상담사가 한 명의 수퍼바이저에게만 배우면, 그 수퍼바이저의 이론적 편향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이런 이론적 편향 없이, 같은 사례를 CBT, 정신역동, 인본주의 등 여러 관점에서 동시에 분석해줄 수 있다. 이건 초보 상담사가 다양한 이론 렌즈를 비교하며 배울 때 특히 유용하다.

세 가지 이론으로 같은 사례를 보면?

사례개념화의 핵심 질문은 “왜 이 사람이, 이 시점에, 이 문제를 겪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이론을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비유하자면, 같은 풍경을 적외선 카메라, 일반 카메라, X-ray로 찍으면 세 장의 완전히 다른 사진이 나오는 것과 같다. 어느 것이 “진짜 풍경”이냐가 아니라, 각 카메라가 보여주는 정보가 다를 뿐이다. 세 가지 주요 이론을 살펴보자.

CBT 프레임:Beck의 인지 모델은 다섯 층으로 사례를 분석한다. (1) 촉발 사건 — 문제가 시작된 구체적 상황. 예를 들어 “기말고사에서 C를 받았다”. (2) 자동적 사고 — 그 상황에서 자동으로 떠오른 생각.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다”. 이 생각은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라서 “자동적”이라 부른다. (3) 인지 왜곡 — 그 생각에 포함된 사고의 함정. 과잉일반화(“한 과목 C = 아무것도 못한다”). (4) 중간 신념 — 자동적 사고를 지배하는 규칙.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5) 핵심 신념 — 가장 깊은 곳의 믿음. “나는 무능하다”. AI는 상담 기록(축어록)에서 이 다섯 요소를 추출하고 관계를 도식화할 수 있다.

아론 T. 벡

아론 T. 벡

핵심 신념은 보통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평생 작동한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나는 무능하다', '세상은 위험하다' — 이런 믿음이 자동적 사고의 공장이 된다.

Beck (1995)

정신역동 프레임:Luborsky의 CCRT(핵심 갈등 관계 주제, Core Conflictual Relationship Theme) 방법은 내담자의 관계 패턴을 분석한다. 세 요소로 구성된다. (1) 소망(Wish) — 타인에게 원하는 것.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2) 타인의 반응 — 상대가 실제로 또는 내가 느끼기에 보이는 반응. “무시당한다”, “거부당한다”. (3) 자기의 반응 — 그에 대한 나의 감정/행동. “화가 난다”, “위축된다”, “포기한다”. 이 패턴이 친구 관계, 부모 관계, 연인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무시당해서 위축되는 사람이, 교수에게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연인에게도 같은 반응을 한다. 이렇게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각본”을 찾는 것이 정신역동의 핵심이다. AI는 축어록에서 여러 관계 에피소드를 뽑아내고, 반복되는 CCRT 패턴을 찾을 수 있다.

레스터 루보스키

레스터 루보스키

사람들은 자신의 핵심 갈등 관계 주제를 의식하지 못한 채 반복한다. 부모에게 받은 거부의 경험이, 상사와의 관계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심지어 상담사와의 관계에서도 되풀이된다.

Luborsky & Crits-Christoph (1998)

인본주의 프레임:Rogers의 인간중심치료에서는 진단보다 “내담자가 자기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집중한다. 핵심 질문은 세 가지다. 이상적인 내가 되고 싶은 모습(ideal self)과 실제 나(real self) 사이의 괴리는 어디서 생기는가? “부모님 기대에 맞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식의 조건부 사랑 (conditions of worth)이 작동하고 있는가? 내담자 안에 성장하려는 힘 (자기실현 경향성)이 어디서 표현되고 있는가? Rogers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의 원인은 “왜곡된 사고”도 “반복되는 관계 패턴”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이 문제다. AI는 축어록에서 자기 인식, 이상적 자기에 대한 진술, 조건부 사랑을 시사하는 표현을 추출할 수 있다.

세 이론의 차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CBT는 “이 사람의 생각이 문제다”라고 보고, 정신역동은 “이 사람의 관계 패턴이 문제다”라고 보고, 인본주의는 “이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문제다”라고 본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냐가 아니다. 세 가지 렌즈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AI 수퍼비전의 핵심 가치다. 초보 상담사가 이 세 관점을 비교해보면, “나는 어떤 관점에 더 끌리는가”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곧 자기만의 상담 정체성 형성의 출발점이 된다.

축어록 분석: AI가 특히 잘하는 영역

축어록(verbatim)은 상담 대화를 한 마디도 빠짐없이 기록한 텍스트다. 녹음된 상담을 글자 그대로 옮기는 작업인데, 상담 수련에서 가장 기본적인 훈련 도구다. 수퍼비전에서 핵심 도구로 쓰이지만, 한 회기 분량(30-50페이지)을 꼼꼼히 읽으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현실적으로 수퍼바이저는 핵심 발화 몇 개만 골라서 보는 경우가 많다. 마치 500쪽짜리 소설을 요약문만 읽고 리뷰를 쓰는 것처럼, 전체를 보지 못하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AI는 이 한계를 넘어선다. 전체 축어록을 대상으로 감정의 흐름, 주제 패턴, 상담사-내담자 상호작용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정서 분석(sentiment analysis)은 단순히 긍정/부정만 나누는 게 아니라, 슬픔, 분노, 불안, 수치심, 희망 같은 세분화된 감정을 발화 하나하나에서 감지한다. 이걸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감정의 전환점(emotional turning point)”이 눈에 보인다. Gainer(2025)는 이 전환점이 치료적 변화의 핵심 순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상담 초반에 내담자가 “어차피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요”(절망, 8/10)라고 말하다가, 상담사가 “지금 여기서는 내가 듣고 있어요”라고 반응한 뒤 “...진짜요?”(놀람+희망, 4/10)로 감정이 바뀌었다면, 그 순간이 치료적 전환점이다. 기존에는 이런 순간을 수퍼바이저의 직관에 의존해서 찾았다. AI는 전체 회기에서 이런 전환점을 체계적으로 찾아준다.

마이클 램버트

마이클 램버트

상담 초기 3-5회기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치료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피드백은 빠를수록 좋다.

Lambert (2013)

Lambert의 연구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진다. 상담이 효과가 없을 때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매 회기 설문지를 돌려서 변화를 추적했지만, AI는 축어록만으로도 회기 내 미세한 감정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수퍼바이저가 일주일에 한 번 피드백을 줄 때, AI는 상담 직후 즉시 분석을 제공한다. 빠른 피드백은 곧 빠른 학습이다. 초보 상담사에게 이것은 성장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칼 로저스

칼 로저스

상담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의 도구는 기법이 아니라 관계다. 그 관계 속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변화를 만든다.

Rogers (1961)

결국 AI 수퍼비전의 역할은 분명하다. AI는 축어록의 전체 패턴을 빠르게 분석하고, 여러 이론적 관점에서 사례를 조명하고, 감정의 전환점을 찾아주는 “1차 분석 도구”다. 하지만 상담 관계의 미묘한 질감, 비언어적 단서, 문화적 맥락의 해석은 인간 수퍼바이저의 영역으로 남는다. 이 두 역할이 합쳐질 때, 초보 상담사는 이전보다 더 넓은 시야와 더 빠른 피드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AI 사례개념화, 실제로 어떻게 하나?

AI로 사례개념화(내담자의 문제를 이론 틀에 맞춰 정리하는 작업)를 하려면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축어록을 정리해서 AI에 넣는다. 둘째, 이론별로 다른 프롬프트를 써서 분석을 요청한다. 셋째, AI가 내놓은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통합한다. 이 과정은 의사가 CT 촬영 결과를 볼 때와 비슷하다. 기계가 이미지를 찍어주지만, 그 이미지를 해석하고 진단을 내리는 건 의사의 몫이다. AI 사례개념화도 마찬가지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해주지만, 그 분석을 어떻게 해석하고 치료 계획에 반영할지는 상담사가 결정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1단계: 축어록 전처리 — 비식별화가 먼저다. 상담 축어록(verbatim, 상담 대화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기록한 텍스트)을 AI에 넣기 전에 반드시 비식별화(de-identification, 개인 정보를 제거하는 작업)를 해야 한다. 이름, 나이, 사는 곳, 직장, 학교 등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가명이나 일반적 표현으로 바꾼다. 예를 들어, “김OO 씨는 강남구에 사는 35세 여성으로 삼성전자에 근무합니다”를 “내담자는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여성입니다”로 바꾸는 것이다.Gainer(2025)는 비식별화를 “AI 수퍼비전의 윤리적 입장권”이라고 표현한다. 비밀보장(confidentiality, 상담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상담 윤리의 기본인데, AI에 축어록을 넣는 순간 그 원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축어록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AI로 자동화할 수 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실시간으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STT, Speech-to-Text)하면, 상담이 끝났을 때 이미 전사본이 완성되어 있다. meeting.tobl.ai는 실시간으로 대화를 전사하고, 화자를 자동 구분하며, 이후 AI 분석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다. 전사 결과를 받은 뒤에도 반드시 사람이 한 번 읽으면서 오탈자와 화자 구분 오류를 확인해야 한다. AI 전사의 정확도는 90~95% 수준이라, 나머지 5~10%는 사람의 눈이 잡아야 한다.

비식별화에서 특히 주의할 점이 있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년에 올림픽 개막식에서 국가를 불렀다”처럼 맥락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도 제거해야 한다. 또한 비식별화를 하면서도 상담에 중요한 맥락은 유지해야 한다. “서울의 명문대 의대 2학년”을 “대학생”으로 바꾸면, 학업 압박의 강도에 대한 정보가 사라진다. 적절한 수준은 “의과대학 2학년” 정도다.

세네카 R. 게이너

세네카 R. 게이너

비식별화는 AI 수퍼비전의 윤리적 입장권이다. 이 입장권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AI 분석도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Gainer (2025, p. 175)

2단계: 이론별 프롬프트 설계. 같은 축어록을 세 가지 이론 안경으로 분석하도록 AI에게 요청한다. 프롬프트를 구체적으로 쓸수록 결과가 좋다. “이 사례를 분석해줘”라고 쓰면 AI는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는다. 반면 “Beck의 인지 모델에 따라 자동적 사고를 추출하고, 각각의 인지 왜곡 유형을 분류해줘”라고 쓰면 훨씬 구체적이고 유용한 결과가 나온다. 프롬프트 설계가 곧 AI 활용 능력이다.

CBT 프롬프트 예시: “이 축어록에서 (1)Beck의 인지 모델에 따라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 상황에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를 추출하고, (2) 각 자동적 사고의 인지 왜곡 유형을 분류하고, (3) 중간 신념과 핵심 신념을 추론하고, (4) CBT 사례개념화를 500자 이내로 작성해줘.”

정신역동 프롬프트 예시: “이 축어록에서 (1)Luborsky의 CCRT(핵심 갈등 관계 주제) 분석을 해줘 — 소망, 타인의 반응, 자기의 반응을 각각 추출해줘. (2) 관계 에피소드에서 반복 패턴을 찾아줘. (3) 상담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전이(transference, 과거 관계 패턴이 상담 관계에서 재현되는 것) 패턴을 예측해줘. (4) 정신역동 사례개념화를 500자 이내로 써줘.”

인본주의 프롬프트 예시: “이 축어록에서 (1)Rogers의 이론에 따라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 사이의 불일치를 탐색해줘. (2) 가치의 조건화(conditions of worth, 남의 기대에 맞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 믿음)를 시사하는 진술을 찾아줘. (3) 자기실현 경향성이 나타나는 순간을 찾아줘. (4) 인본주의 사례개념화를 500자 이내로 써줘.”

세 가지 프롬프트를 같은 축어록에 적용하면, 같은 내담자의 같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사례개념화로 변환된다. 이 경험이 초보 상담사에게 주는 교육적 가치는 크다. 교과서에서 “이론마다 관점이 다르다”고 읽는 것과, 실제 축어록에서 그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학습의 깊이가 다르다.

감정의 흐름을 추적하면 전환점이 보인다

정서 흐름 분석(emotional flow analysis)은 사례개념화를 보완하는 강력한 도구다. AI에게 “이 축어록의 각 발화에서 감정을 분류하고, 강도를 1-10점으로 매겨줘.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줘”라고 요청하면, 상담 회기 안에서 감정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예를 들어, 처음에 불안(7/10)이 가득하던 내담자가 상담사의 특정 반응 이후 불안이 줄고(4/10) 희망(5/10)이 나타나는 순간이 포착될 수 있다. 이 “감정의 전환점”은 “상담사의 어떤 개입이 효과적이었는가?”를 분석하는 출발점이 된다.

감정 흐름 분석의 실용적 가치는 수퍼비전 시간의 효율화에 있다. 50분짜리 회기에서 130개의 발화가 오갔다고 하자. 수퍼바이저가 이것을 전부 검토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AI가 먼저 “이 회기에서 감정 변화가 가장 큰 세 구간”을 찾아주면, 수퍼바이저는 그 구간에 집중해서 더 깊은 분석을 할 수 있다. 전체를 훑는 건 AI가, 깊이 파는 건 인간이 하는 분업이다.

Michael Lambert의 OQ-45(Outcome Questionnaire-45, 상담 성과를 추적하는 표준 설문지) 연구에 따르면, 상담 초기 3-5회기에 “유의미한 변화”가 안 나타나면 치료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상담 성과는 PHQ-9(우울증 선별 설문), OQ-45 같은 설문지로 “회기 단위”로 측정했다. 하지만 AI의 정서 분석은 “발화 단위”로 감정 변화를 추적한다. 훨씬 정밀한 과정 분석(process analysis, 상담 과정에서 무엇이 효과적인지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마이클 램버트

마이클 램버트

상담의 변화는 거대한 통찰의 순간에만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에서 안도로, 수치심에서 자기수용으로 — 미세한 감정 이동이 누적되어 변화를 만든다.

Lambert (2013)
세네카 R. 게이너

세네카 R. 게이너

정서 흐름 분석은 수퍼바이저와 초보 상담사가 '같은 지도'를 보고 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추상적인 인상 대신 구체적인 데이터에서 시작하는 대화는 수퍼비전의 질을 높인다.

Gainer (2025, p. 180)

정서 흐름 분석의 또 다른 활용법은 “상담사 자기 성찰”이다. AI에게 내담자뿐 아니라 상담사의 발화도 분석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상담사가 특정 주제에서 갑자기 말이 짧아지거나, 질문이 많아지거나, 반영 대신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상담사 자신의 불편함이 개입된 신호일 수 있다. 이런 패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AI 분석의 숨은 가치다.

AI 수퍼비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AI 수퍼비전의 장점은 세 가지다. 첫째, 24시간 즉시 피드백. 인간 수퍼바이저는 보통 주 1회 만나지만, AI는 축어록을 넣으면 바로 분석 결과를 돌려준다. 상담 직후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니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 금요일에 한 상담을 다음 주 수요일 수퍼비전에서 논의하면, 이미 기억이 희미해져 있다. AI는 이 시간 차이를 제거한다. 둘째, 여러 이론 관점을 한꺼번에. 앞서 본 대로, CBT/정신역동/ 인본주의 분석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셋째, 감정적 편향이 없다. 인간 수퍼바이저도 자기 경험과 가치관의 영향을 받지만, AI는 그런 개인적 편향에서 자유롭다(물론 훈련 데이터에 들어있는 편향은 별개 문제다).

하지만 AI 수퍼비전에는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비언어적 단서를 못 읽는다. 축어록에는 표정, 목소리 톤, 몸짓, 눈 맞춤, 침묵의 “질”이 안 담긴다. 상담에서 비언어적 정보가 전체 소통의 55-93%를 차지한다는 연구(Mehrabian, 1971)를 생각하면 큰 한계다. 내담자가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것과, 밝게 웃으면서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텍스트만으로는 이 구분이 불가능하다. 둘째, 상담 관계의 질을 평가할 수 없다. 치료적 동맹(therapeutic alliance,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의 신뢰와 협력 관계)은 글만으로 충분히 평가하기 어렵다. 셋째, 한국 문화의 맥락을 놓칠 수 있다. 효도 관념, 학벌 문화, 세대 간 소통 방식 같은 것들 — “엄마가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한국 가족 역동을 모르면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Gainer(2025)는 AI를 “1차 스크리닝 도구”로 쓰자고 제안한다. AI가 축어록의 전체 패턴과 주요 논점을 먼저 뽑아내고, 인간 수퍼바이저가 그걸 바탕으로 더 깊이 있는 탐색을 하는 “하이브리드 수퍼비전 모델(hybrid supervision model)”이다. AI는 “준비 작업”, 인간은 “깊이 있는 해석”을 맡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AI는 수퍼바이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퍼바이저가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돕는 “수퍼비전 보조 도구”가 된다.

칼 로저스

칼 로저스

상담사가 내담자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내담자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서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Rogers (1980)

Rogers의 이 말은 AI 수퍼비전의 위치를 정확히 요약한다. AI는 상담사가 내담자의 세계를 탐색하는 데 유용한 “지도”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서 실제로 내담자와 함께 걸어가는 것은 인간 상담사만 할 수 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사례개념화를 만들어도, 내담자 앞에 앉아서 눈을 맞추고 침묵을 함께 견디며 “당신의 고통이 느껴집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기술과 인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AI 시대 상담사의 첫 번째 과제다.

실습: AI로 축어록 분석하고 사례개념화 해보기

이번 실습의 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 비식별화된 상담 축어록(상담 대화를 빠짐없이 기록한 텍스트)을 AI에 넣어서 감정의 흐름을 분석한다. 둘째, 같은 축어록을 CBT, 정신역동, 인본주의 세 가지 관점에서 사례개념화하고 비교한다. 셋째,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믿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연습을 한다.

실습에 쓸 축어록은 수업 시간에 나눠주는 비식별화된 샘플이다. 실제 상담을 바탕으로 하되, 모든 개인 정보가 제거되어 있다. 길이는 약 2,000자(상담 회기의 일부 발췌)이고, 내담자의 주요 호소는 학업 스트레스와 가족 갈등이다. 대학원 수련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례 유형이라 분석 연습에 딱 맞는다.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가 있다. AI에게 축어록을 넣을 때, 실제 내담자의 개인 정보가 포함된 자료는 절대 쓰지 않는다. 수업에서 제공하는 비식별화된 샘플만 사용한다. 이것은 윤리적 훈련의 일부이기도 하다. 상담사가 되면 비밀보장은 모든 결정의 출발점이다. AI를 쓸 때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AI 분석을 검토하는 다섯 가지 질문

AI가 내놓은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Gainer(2025)는 AI 수퍼비전 결과를 검토할 때 다섯 가지를 물어보라고 한다. (1) “이 분석의 근거가 축어록 어디에 있나?” — AI의 해석이 구체적인 발화에 바탕을 두는지 확인한다. AI가 “내담자는 핵심 신념이 무능감이다”라고 했으면, 축어록에서 정확히 어떤 발화를 근거로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2)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나?” —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나는 못해요”라는 말이 무능감일 수도 있지만, 특정 맥락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 (3) “표정이나 목소리가 보였다면 분석이 달라졌을까?” — 텍스트에 안 담긴 정보의 영향을 생각한다. (4) “한국 문화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했나?” — 효도, 학벌, 세대 차이 같은 특수성이 빠지지 않았는지 본다. (5) “경험 많은 수퍼바이저라면 뭘 더 파고들까?” — AI가 못 잡는 관계적, 체험적 차원을 상상해본다.

세네카 R. 게이너

세네카 R. 게이너

AI 분석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전면적으로 거부해서도 안 된다. 상담사의 임상적 판단을 기반으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보완하는 능력 — 이것이 비판적 AI 리터러시다.

Gainer (2025, p. 185)

이 다섯 가지 질문은 AI 시대 상담사의 핵심 역량인 “비판적 AI 리터러시(Critical AI Literacy)”의 출발점이다. AI를 무조건 믿지도, 무조건 거부하지도 않으면서, 상담사로서의 판단력을 바탕으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능력이다. 이 역량은 기존에 “연구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근거 기반 실무, evidence-based practice)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 대상이 논문에서 AI로 바뀌었을 뿐이다.

비판적 AI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자. AI가 “이 내담자의 핵심 신념은 무능감이다”라고 분석했을 때, 이 결과를 그대로 수퍼비전 보고서에 적으면 위험하다. AI는 축어록의 표면적 단어만 보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실제로 그 내담자의 “나는 못해요”라는 말이 정말 무능감인지, 아니면 과도한 기대를 받는 환경에서 나온 피로감인지는 상담사가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칼 로저스

칼 로저스

경험은 나에게 최고의 권위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사람의 말이든, 내 경험으로 검증해야 한다.

Rogers (1961)
아론 T. 벡

아론 T. 벡

인지치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치료자가 자기 가설에 빠져서 내담자의 실제 경험을 무시하는 것이다. 가설은 항상 검증 대상이지, 확정된 진단이 아니다.

Beck (1979)

Beck의 이 원칙은 AI 분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가 만든 사례개념화는 “가설”이지 “진단”이 아니다. 상담사는 이 가설을 내담자와의 대화를 통해 검증하고, 필요하면 수정한다. AI의 역할은 가설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지, 가설을 확정짓는 것이 아니다.

실습 결과를 비교해보면 보이는 것들

세 가지 이론의 사례개념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같은 발화에 대해 CBT는 “인지 왜곡”으로 분류하고, 정신역동은 “관계 패턴의 반복”으로 해석하고, 인본주의는 “조건부 사랑의 내면화”로 읽는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엄마한테 인정받으려면 항상 1등을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CBT는 이것을 “이분법적 사고”(1등 아니면 실패)로 본다. 정신역동은 “인정받고 싶다(소망) → 조건부로만 받아들여진다(타인의 반응) → 자기를 더 압박한다(자기의 반응)”라는 CCRT 패턴으로 본다. 인본주의는 “1등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조건부 사랑이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의 괴리를 만들고 있다고 본다.

어느 해석이 맞는가? 셋 다 맞을 수 있다. 이것이 상담 이론의 특성이다.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것이지, 하나만 정답인 게 아니다. AI는 이 세 관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초보 상담사가 “어떤 렌즈가 이 사례에 가장 유용한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참고 문헌

  • Beck, J. S. (2020). Cognitive behavior therapy: Basics and beyond (3rd ed.). Guilford Press.
  • Gainer, S. R. (2025). The counseling singularity: AI integration in therapeutic practice. Professional Publishing.
  • Lambert, M. J. (2013). The efficacy and effectiveness of psychotherapy. In M. J. Lambert (Ed.), Bergin and Garfield's handbook of psychotherapy and behavior change (6th ed., pp. 169–218). Wiley.
  • Luborsky, L. (1984). Principles of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A manual for supportive-expressive treatment. Basic Books.
  • Mehrabian, A. (1971). Silent messages: Implicit communication of emotions and attitudes. Wadsworth.
  • Rogers, C. R. (1957). The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of therapeutic personality change. Journal of Consulting Psychology, 21(2), 95–103.
  • Torous, J., Bucci, S., Bell, I. H., Kessing, L. V., Faurholt-Jepsen, M., Whelan, P., ... & Firth, J. (2021). The growing field of digital psychiatry: Current evidence and the future of apps, social media, chatbots, and virtual reality. World Psychiatry, 20(3), 318–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