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드디어 일의 미래를
알게되었다

AI랑 같이 살아보니 알겠더라

유호현·2026. 3. 22.·12 min read

노동의 종말은 오지 않는다

기술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노동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세탁기가 나왔을 때 “더 이상 집안일을 안 해도 되겠다!” 했고, 컴퓨터가 나왔을 때 “모든 게 자동화되겠다!” 했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는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그 시대 사람에게 우리 하루를 설명한다면 어떨까.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일해요. 매일 왕복 50km를 출퇴근하고, 편지를 20통 보내고, 보고서를 산더미같이 쓰고, 온갖 책을 읽고, 전 세계 언어를 하고, 집에 와서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투표로 국가 의사결정에도 참여합니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면 이건 노비이자 마차꾼이자 전령이자 서기관이자 선비이자 역관이자 아낙이자 왕이다. 완전한 갓생 n잡러. 조선시대 사람이 몇 달에 걸쳐서 할 일을 현대인은 하루에 해치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노비+마차꾼+전령+서기관+선비+역관+아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 자동차, 이메일, 컴퓨터, 인터넷, 번역기 같은 기술이 옛날 직업들을 통째로 흡수해버렸으니까. 그 기술들은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인프라가 됐다. 누구나 쓰는 거니까.

AI도 똑같다. 코딩, 글쓰기, 디자인, 데이터 분석 — 지금은 이것들이 “전문 스킬”이지만, AI라는 인프라에 흡수되면 “개발자”, “작가”, “디자이너”라는 분류도 “마차꾼”, “전령”처럼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 마차꾼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 전령만 해서도, 역관만 해서도 안 된다. 조선시대 직업 하나에 해당하는 일만 해서는 현대 사회에서 먹고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AI 시대에는 현재의 직업 하나에 해당하는 일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코딩만 하는 개발자, 글만 쓰는 작가, 소송만 하는 변호사, 강의만 하는 교수 — AI가 그 스킬 하나하나를 인프라로 만들어버리면, 그 스킬 하나에 기대어 사는 것은 마차꾼이 자동차 시대에 마차만 몰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뭐가 남을까?

AI랑 같이 살아보니 알겠다

나는 지금 회사 두 개의 대표이면서, 대학교 겸임교수이면서, 연구원 팀장이면서, 작가이면서, 국가위원회 강연자이면서, 정치인 IT 정책 자문이면서, 개발자다. 옛날 기준으로 보면 CEO, 교수, 연구자, 작가, 개발자, 컨설턴트, 강연자를 동시에 하는 n잡러다.

하루가 이렇다. 아침에 서울시장 후보를 위한 IT 정책 보고서를 쓴다. 점심 전에 발표 슬라이드 50장을 만든다. 오후에는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저녁에는 대학원 수업을 위한 교재를 쓴다. 주말에는 AI 치트시트를 디자인한다. 이 모든 걸 Claude Code라는 AI 코딩 도구 하나로 직접 만든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관성이 있다. 한국 보안 시스템을 글로벌 표준으로 바꾸는 것. 상담사들이 AI를 활용하게 돕는 것.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 기업을 AI-First로 전환하는 것. 전부 “전환”이다.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일.

그러니까 내 직업은 CEO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개발자도 아니다. 내 직업은 전환 기획자(Transition Planner)다. 여러 개의 스킬을 가진 n잡러가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가진 사람. 스킬이 아니라 목적이 직업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 AI와 함께 일하면서 코딩도 하고,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고, 강의도 만들다 보니 — 스킬의 경계가 사라지니까 비로소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선명해졌다.

모든 직업이 이렇게 바뀐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같은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변호사를 생각해보자. 옛날 변호사는 소송하고 계약서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AI 시대의 변호사는? 소송도 하지만, 이주민 노동자를 위한 권리 교육 유튜브도 운영하고, AI로 영상 자막을 6개 언어로 번역하고, 피해자 상담 예약 앱도 직접 만든다. 이 사람을 정확하게 부르자면 “약자 보호자”다. 소송은 그 목적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건국대에서 내가 가르치는 상담심리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다. 이 학생들은 상담만 배우는 게 아니라, AI 챗봇을 개발하고, 감정일기 앱을 만들고, 심리 교육 콘텐츠를 기획한다. 한 학기 안에. “상담사”라는 스킬 기반 직업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이라는 목적 기반 직업으로 자기를 정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 작가는 글만 썼다. 지금은 같은 생각을 책으로도 쓰고, 유튜브로도 만들고, 팟캐스트로도 말하고, 뉴스레터로도 보내고, 숏폼으로도 퍼뜨린다. AI가 각 매체의 기술 장벽을 없애주니까 가능해진 일이다. “작가”라는 말보다 “생각 전달자”가 더 정확하다. 글쓰기는 수단이고, 목적은 생각을 전하는 것이니까.

개발자는 더 극적이다. 코딩이라는 스킬 자체는 AI가 대부분 해준다. 그러면 개발자에게 남는 건 뭘까? “세상의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를 고르는 것. 한 사람이 AI에게 시켜서 앱도 만들고, 서버도 세우고, 데이터도 분석한다. “문제 해결자”가 되는 거다.

옛날에는 “앱 만드는 사람”과 “음악 만드는 사람”이 완전히 다른 직업이었다. AI 시대에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앱도 만들고, 음악도 만들고, 영상도 만들고, 책도 쓴다. 스킬의 벽이 사라지면, 남는 건 “왜”뿐이다.

스킬은 인프라가 된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다. 코딩, 글쓰기, 디자인 — 이것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AI가 제공하는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전기를 쓰려면 발전기를 직접 돌려야 했다. 지금은 콘센트에 꽂으면 된다. 전기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인프라가 된 것이다. 코딩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앱을 만들려면 개발자를 고용해야 했다. 지금은 AI에게 말하면 된다. 코딩이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인프라가 된 것이다.

그때 사람에게 남는 것은 “왜”다. 왜 이 앱을 만드는가. 왜 이 글을 쓰는가. 왜 이 사람을 돕는가. 그 “왜”가 곧 직업이 된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하나

AI가 코딩도 하고, 번역도 하고, 수학도 풀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드는 시대가 되면, 우리가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의 의미가 달라진다. 코딩을 가르쳐야 할까? 영어를 가르쳐야 할까? 수학을 가르쳐야 할까?

물론 다 배우면 좋다. 하지만 그것들이 “직업을 얻기 위한 스킬”로서의 의미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러면 교육의 핵심은 뭐가 될까?

“너는 뭘 하고 싶니?” — 이 질문에 답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스킬 교육이 아니라 목적 발견.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왜 이 세상에 있는지를 찾게 돕는 것.

이걸 찾은 아이는 AI를 도구로 쓴다. 못 찾은 아이는 AI에 대체된다.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취향과 판단력이다. AI가 100개의 답을 줄 때, 어떤 답이 좋은지 판단하는 능력. 이건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해서 생기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교육이 AI 시대에 가장 중요해진다.

그리고 공감. 목적 기반 직업의 공통점은 전부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마음을 치유하고, 성장을 돕는다. 타인의 고통과 필요를 느끼는 능력이 모든 목적의 출발점이다.

마지막으로 만드는 경험. AI 시대에 가장 좋은 교육은 AI로 뭔가를 직접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다. 앱을 만들어보고, 영상을 만들어보고, 음악을 만들어보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이걸 만들 때 가장 행복하구나”를 발견하게 된다. 목적은 교실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험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옛 교육은 이랬다. “이 스킬을 익혀라. 그러면 직업을 얻을 수 있다.” AI 시대 교육은 이렇게 바뀐다. “너는 뭘 하고 싶니? 그러면 AI가 도와줄 거야.”

유호현 · Transition Planner

슈퍼휴먼 슈퍼워크 저자 · 교보문고 ·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