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워크 프레임워크의 탄생
2023년 12월, 10개 회사를 동시에 컨설팅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친구 3명에게 내 프롬프트를 그대로 가르쳐줬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IT 기업 프로덕트 매니저였던 한 친구는 ChatGPT로 신규 서비스 기획서를 3시간 만에 완성했다. 시장 분석, 경쟁사 비교, 사용자 페르소나, 비즈니스 모델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하지만 팀장, 본부장, 임원으로 이어지는 결재 라인을 거치는 2주 동안 세 차례 수정 요청을 받았다. "이 부분 좀 더 보완해줘", "데이터 출처를 명확히 해줘", "경쟁사 비교를 테이블로 바꿔줘." 수정 자체는 30분이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각 단계마다 3~4일씩 대기했다. 기획서가 최종 승인됐을 때는 이미 경쟁사가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한 뒤였다.
광고 대행사 디자이너였던 다른 친구는 Midjourney로 클라이언트 취향에 맞춘 20가지 시안을 하루 만에 완성했다. A/B 테스트 결과 CTR이 30% 높은 디자인도 명확했다. 하지만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임원 한 명이 "이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보여줬지만 "내 경험상 이런 톤은 안 먹힌다"는 답만 돌아왔다. CTR이 낮은 디자인으로 캠페인을 진행했고, 성과는 예상대로 저조했다.
스타트업 개발자였던 또 다른 친구는 GitHub Copilot으로 일주일이면 끝날 기능을 이틀 만에 완성했다. 하지만 디자인팀과 마케팅팀의 요구사항이 서로 달랐고, 두 팀 간 조율 회의가 2주째 열리지 않았다. 개발된 기능은 3개월 동안 배포되지 못한 채 "검토 중"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 사이 경쟁사는 동일한 기능을 출시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개인이 10배 빨라졌지만, 조직은 여전히 1배 속도로 움직였다.
슈퍼워크(Superwork)는 슈퍼휴먼들이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 시스템이다. 개인의 특별한 재능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배워서 적용할 수 있으며, 조직 전체로 확장 가능하다. 이 프레임워크는 재현가능성, 지속가능성, 확장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 위에 세워졌다. 전통적 조직이 계급 중심으로 작동한다면, 슈퍼워크 조직은 역할 중심으로 작동한다.
전통적 조직의 한계: 계급 중심 시스템
대부분의 조직은 여전히 20세기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계급 중심(Rank-driven)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정보는 아래에서 위로 전달되는 전통적인 명령-통제 구조를 따른다. 이 구조는 공장 시스템에서는 효율적이었다. 표준화된 작업을 반복하고, 관리자가 품질을 확인하며, 최종 의사결정은 경영진이 내리는 방식.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구조가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의사결정권은 CEO나 고위직에 집중돼 있고, 하위직은 지시사항을 실행하는 역할에 국한된다. 계급이 전문성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직급이 높으면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도 결정권을 갖는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계급 구조에서 차단되거나 왜곡된다.
왜 계급 중심은 AI 시대에 실패하는가
계급 중심 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병목 현상이다. 모든 의사결정이 소수의 고위직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직 전체의 속도는 그 소수의 처리 속도에 제한된다. 10개 팀이 AI를 활용해 동시에 10배 빠르게 일해도, 모든 결정을 한 사람이 검토해야 한다면 조직은 여전히 한 사람의 속도로 움직인다.
두 번째 문제는 전문성의 낭비다. 디자이너가 A/B 테스트와 사용자 조사를 통해 최적의 디자인을 찾아도, 임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결정을 뒤집는다. 데이터 과학자가 정교한 예측 모델을 만들어도, 경영진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며 무시한다.
세 번째 문제는 책임의 분리다.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에서 실행한다. 결과가 나쁘면 실행자가 비난받고, 결과가 좋으면 의사결정권자가 칭찬받는다.
슈퍼워크의 핵심: 역할 중심 시스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이유는 역할 중심(Role-driven) 조직 구조에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공유된 미션을 중심으로 각 전문가가 자신의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핵심은 권한과 책임의 일치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진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결정을 내리고, 엔지니어가 기술 결정을 내리고, 마케터가 마케팅 전략을 결정한다. 리더의 역할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한 50인 규모의 SaaS 스타트업 사례가 이 전환의 위력을 보여준다. CEO는 모든 제품 결정을 직접 내렸다. "버튼 색깔은 파란색", "이 기능은 다음 분기로", "가격은 월 5만 원". 팀원들은 능력 있는 전문가들이었지만, 모든 것이 CEO의 승인을 기다려야 했다. 제품 출시 주기는 3개월이었고, 경쟁사는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출시했다.
조직 구조를 바꾸면서 제품 결정은 프로덕트 매니저가, 기술 결정은 CTO가, 디자인 결정은 디자인 리드가 내리도록 했다. CEO는 주간 회의에서 각 리더의 결정을 리뷰하고 피드백을 주되, 번복하지는 않았다. 대신 "왜 그 결정을 내렸는지", "결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를 물었다.
3개월 후, 제품 출시 주기는 2주로 단축됐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밤늦게까지 남아 A/B 테스트 결과를 분석했고, 디자이너는 사용자 피드백을 직접 수집하며 디자인을 개선했다.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게 되자, 모두가 더 신중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역할 중심 조직에서는 해당 영역의 전문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므로 의사결정 품질이 높아진다. 결정권자가 결과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지므로 신중하고 열정적으로 접근한다. 전문가의 창의성과 통찰이 직접 반영되므로 혁신이 빠르게 일어난다. 최고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성이 존중받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을 선택한다.
슈퍼워크의 3요소
슈퍼휴먼들이 실제로 성과를 내는 조직에는 3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각 요소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슈퍼워크가 실현된다.
1. 미션 중심 정렬 (Mission-Driven Alignment)
모든 구성원이 공유된 목표를 향해 정렬되어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각자의 전문성에 맡긴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다. 연주할 곡은 정해져 있지만, 각 악기 연주자는 자신의 파트에서 최고의 연주를 위해 전문적 판단을 내린다.
한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 이 원칙을 도입했을 때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과거에는 "클라이언트 만족도 90% 달성"이라는 목표와 함께 "주 2회 미팅, 월 1회 보고서, 표준 템플릿 사용" 같은 세부 방법까지 지정했다. 하지만 방법을 전문가에게 위임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컨설턴트는 클라이언트가 바쁘다는 것을 알고 미팅 대신 비동기 협업 도구를 제안했다. 다른 컨설턴트는 보고서 대신 인터랙티브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결과는? 클라이언트 만족도가 95%로 상승했고, 컨설턴트의 업무 만족도도 함께 올랐다.
미션 중심 정렬의 핵심은 "무엇을(What)"과 "왜(Why)"는 명확히 하되, "어떻게(How)"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계급 중심 조직과의 근본적 차이다. 계급 중심 조직은 How까지 지시하지만, 역할 중심 조직은 What과 Why만 공유하고 How는 신뢰한다.
실무적으로는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이다. 마케팅팀은 어떻게 달성할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게"라는 식으로 작동한다. 목표는 명확하되, 그 목표를 달성하는 구체적 방법론은 마케팅 전문가가 시장 상황, 경쟁사 동향, 고객 특성을 고려해 결정한다. 리더는 주기적으로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지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2. 전문성 기반 권한 (Expertise-Based Authority)
의사결정권이 계급이 아닌 해당 영역의 전문성에 따라 분배된다. 기술적 결정은 엔지니어가, 디자인 결정은 디자이너가, 마케팅 결정은 마케터가 내린다. 리더의 역할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전문가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 금융 스타트업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신규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CEO는 "파란색이 신뢰감을 준다"며 UI 색상을 파란색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과거 같았으면 그대로 진행됐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 리드는 "고객 조사 결과 우리 타겟층은 파란색을 '보수적'이라고 느낀다. 대신 에메랄드 그린이 '혁신적이면서 신뢰감 있다'는 반응을 얻었다"며 데이터를 제시했다. CEO는 "개인적으로는 파란색이 마음에 들지만, 당신이 디자인 전문가이고 결과에 책임을 지므로 최종 결정은 당신이 내리게"라고 말했다. 결과는? 에메랄드 그린 UI는 A/B 테스트에서 파란색 대비 전환율이 27% 높았다.
전문성 기반 권한이 작동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전문가를 신뢰해야 한다. 전문가를 고용해놓고 그들의 판단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둘째, 전문가는 자신의 결정을 데이터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경험상..."이 아니라 "테스트 결과..."로 말해야 한다. 셋째,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배우고 개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실제 조직에서 이를 구현할 때는 의사결정 매트릭스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술 아키텍처 결정 → CTO", "UX 디자인 결정 → 디자인 리드", "가격 정책 결정 → 프로덕트 매니저와 CFO 협의" 같은 식으로 누가 어떤 영역에서 최종 결정권을 갖는지 명확히 문서화한다. 이것이 계급이 아닌 전문성에 기반한 권한 분배의 시작이다.
3. 결과 기반 책임 (Outcome-Based Accountability)
권한과 함께 오는 것은 책임이다. 각 전문가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진다. 단순히 지시를 따랐는지가 아니라 실제 결과를 달성했는지로 평가받는다.
한 전자상거래 기업의 개발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엔지니어 팀장이 새로운 기술 스택을 선택했다. "최신 기술이고 개발 속도가 30% 빠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론칭 3개월 후, 성능 문제가 발생했다. 트래픽이 증가하면 서버가 다운되는 현상이 반복됐다. CTO는 팀장을 질책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선택한 기술 스택이 성능 문제를 일으켰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개선하게."
팀장은 2주간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동시에 "기술 선택 시 확장성 테스트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팀 전체와 공유했다. 6개월 후 이 체크리스트는 전사 표준이 됐다. 실수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과 개선의 기회가 된 것이다.
결과 기반 책임은 비난이 아닌 성장의 도구다. 계급 중심 조직에서는 실패하면 "왜 지시대로 하지 않았느냐" 또는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역할 중심 조직에서는 "무엇을 배웠는가", "다음에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묻는다. 전자는 두려움을 만들고, 후자는 성장을 만든다.
실무적으로는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같은 프레임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각 전문가가 분기별로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를 스스로 설정하고, 분기말에 달성 여부를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미달성 시 처벌이 아니라 "왜 미달성했는가", "다음 분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 미션 중심 정렬이 방향을 제시하고, 전문성 기반 권한이 실행을 가능하게 하고, 결과 기반 책임이 성과를 보장한다. 하나라도 빠지면 시스템은 무너진다. 미션 없이 권한만 주면 혼란이 생기고, 권한 없이 책임만 묻으면 불만이 쌓이고, 책임 없이 미션과 권한만 있으면 나태해진다.
AI 시대의 조직 진화
AI 시대에는 역할 중심 조직의 장점이 더욱 극대화된다. 계급 중심 조직에서는 개인이 10배 빨라져도 조직은 여전히 1배 속도다. 반면 역할 중심 조직에서는 10명의 슈퍼휴먼이 각자의 영역에서 동시에 AI를 활용하며 의사결정한다. 마케팅 전문가는 AI로 캠페인을 만들고 즉시 실행하고, 엔지니어는 AI로 개발하며 즉시 배포하고, 디자이너는 AI로 디자인하고 즉시 적용한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각 전문 영역에서의 깊은 이해와 창의적 적용이 필요하다. 이것은 중앙에서 통제할 수 없다. 마케터만이 자신의 영역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가장 잘 안다. 엔지니어만이 기술적 맥락에서 AI를 어떻게 적용할지 판단할 수 있다.
계급 중심 조직의 한계
계급 중심 조직에서는 AI 사용이 전사적으로 표준화된다. "전 직원 ChatGPT 교육", "표준 프롬프트 템플릿 배포" 같은 방식이다. 모든 구성원의 개인 생산성은 2배 정도 향상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그대로다. 빠르게 만든 기획서가 여전히 결재 라인을 돈다. 개인은 2배 빨라졌지만, 조직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역할 중심 조직의 폭발적 성장
역할 중심 조직에서는 각 전문가가 자기 영역에서 AI를 최적화한다. 마케터는 AI로 캠페인을 하루 만에 끝내고 즉시 실행한다. 엔지니어는 개발을 일주일에서 하루로 단축하고 바로 론칭한다. 개인이 10배 빨라지고, 의사결정도 10배 빨라진다. 한 달 걸리던 프로젝트가 며칠 만에, 1년 걸리던 로드맵이 한 달 만에 완성된다.
성과 지표도 변화한다. 시간 기반에서 가치 기반으로, 경험 년수에서 학습 민첩성으로, 개별 성과에서 협업 성과로 전환된다. 몇 시간 일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가가 중요해진다. 과거 경험보다 새로운 AI 도구를 얼마나 빨리 습득하는가가 경쟁력이 된다. 혼자서 잘하는 것보다 AI와 팀과 얼마나 잘 협업하는가가 평가 기준이 된다.
슈퍼워크로의 전환: 첫 발걸음
슈퍼워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첫 걸음은 의외로 간단하다. 개인 차원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음 프로젝트에서 상사에게 "제가 전문가로서 이 결정을 내리고 결과에 책임지겠습니다"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소규모 결정부터 시작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결과를 데이터로 보여주며 신뢰를 구축한다.
팀 차원에서는 공유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고, 각 구성원의 전문 영역과 의사결정 권한을 명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 팀의 목표는 X다. 기술 결정은 엔지니어가, 디자인 결정은 디자이너가 내린다." 주간 회의에서 결과를 공유하며 상호 책임을 강화한다.
조직 차원에서는 직급 중심 보상을 역할과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고,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문서화하며, 실패를 학습 기회로 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많은 조직이 캐주얼 복장, 유연 근무, 탁구대를 도입하며 "혁신적 문화"를 표방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그대로 둔다. 핵심은 의사결정권과 책임의 재분배다. 겉모습이 아니라 작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
처음에는 불안할 것이다. 틀린 결정을 내리면 어떡하나? 실패하면?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학습의 기회다. 실패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배우고, 다음에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 AI 시대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계급 중심 조직은 점점 느려지고, 역할 중심 조직은 점점 빨라진다. 5년 후, 어떤 조직으로 남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