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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트럭을 100미터마다 세운 회사

광화문에서 시청까지의 작은 배송 이야기가 기업 AX 전체를 설명한다.

사람에게 맞춰진 릴레이 조직에 트럭을 넣으면 왜 비용과 혼란이 늘어나는지, 그리고 이 비유가 AI 도입 초기의 기업 현장과 어떻게 겹치는지 설명한다.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어떤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의 일은 단순했다.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박스를 옮기는 일이었다. 거리는 1.2킬로미터. 지도로 보면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많을 때는 수백 번 박스를 옮겨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사람이 계속 왕복하면 지치고, 속도는 흔들리고, 박스가 쌓이면 고객은 기다려야 한다.

회사는 사람의 한계를 기준으로 가장 합리적인 구조를 찾아냈다. 100미터마다 한 사람씩 배치했다. 첫 사람이 박스를 들고 100미터를 뛰고,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 두 번째 사람은 다시 자기 구간을 뛰고, 세 번째 사람에게 넘긴다. 열두 명이 일렬로 서서 박스를 릴레이하면 한 사람에게 모든 부담이 몰리지 않는다. 문제도 구간별로 찾을 수 있다. 이 방식은 우습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만 가진 회사가 만들 수 있는 꽤 훌륭한 운영체계였다.

기업의 기존 업무도 대개 이렇게 만들어졌다. 보고서 작성, 결재, 고객 응대, 계약 검토, 세금계산서 처리, 프로젝트 관리, 채용, 교육, 재고 확인 같은 업무는 모두 사람의 기억력, 주의력, 체력, 책임 범위에 맞춰 잘게 쪼개져 있다. 누군가는 자료를 찾고, 누군가는 정리하고, 누군가는 검토하고, 누군가는 승인한다. 밖에서 보면 비효율이지만 안에서 보면 이유가 있다. 책임을 나누고, 실수를 줄이고, 경험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판단을 맡기기 위해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기존 최적화의 품격

AX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태도는 기존 조직을 미개한 것으로 보는 태도다. 많은 컨설턴트와 기술 도입팀은 기존 업무를 낡고 비효율적이라고만 말한다. 하지만 실제 기업에 들어가 보면 이상해 보이는 절차도 대개 생존의 흔적이다. 엑셀 취합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시스템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재선이 길어진 이유는 책임을 분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정 담당자에게 일이 몰리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료의 위치와 예외 케이스를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출발점은 “기존 방식은 틀렸다”가 아니다. 더 정확한 말은 “기존 방식은 사람 시대의 제약 안에서는 맞았다”이다. 문제는 기술이 바뀐 뒤에도 같은 최적화를 계속 유지한다는 데 있다. 100미터 릴레이는 사람이 박스를 옮길 때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트럭이 등장하면 그 효율성은 갑자기 낡은 제약이 된다.

트럭의 등장

어느 날 트럭이 등장했다. 트럭은 사람보다 빠르고, 한 번에 더 많은 박스를 싣고, 피곤해하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트럭을 쓰면 엄청 좋아집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회사는 흥분했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혁신팀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했다. 그리고 가장 단순한 결정을 내렸다. 열두 명 모두에게 트럭을 한 대씩 지급했다.

처음 며칠은 모두가 새로운 도구에 관심을 보였다. 이제 직원들은 자기 100미터 구간을 트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곧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00미터는 트럭이 달리기에는 너무 짧았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고 멈추고 유턴하는 과정이 박스를 들고 뛰는 것보다 복잡했다. 열두 대의 차량을 관리해야 했고, 주차 공간과 정비와 보험과 기름값이 필요했다. 어떤 구간은 유턴이 어려웠고, 어떤 직원은 운전이 서툴렀다. 예전처럼 뛰는 편이 낫다는 불만도 나왔다.

문제는 트럭이 아니었다. 문제는 트럭을 사람 릴레이 구조 안에 그대로 끼워 넣은 것이었다. 기술은 바뀌었지만 업무의 단위는 바뀌지 않았다. 도구는 커졌지만 조직의 상상력은 여전히 100미터에 갇혀 있었다.

AI 도입 현장의 같은 장면

요즘 기업에서 AI 컨설팅을 하다 보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 전 직원에게 AI 계정을 나눠준다. 프롬프트 교육을 한다. 부서별 활용 사례를 모은다. 회의록을 요약하고, 이메일을 다듬고, 보고서 초안을 만들고, 자료를 검색한다. 처음에는 분명히 좋아진다. 개인은 편해진다. 빈 문서를 마주하는 시간이 줄고, 번역과 요약이 쉬워지고, 생각의 출발점이 빨라진다.

하지만 곧 조직의 벽이 나타난다. AI가 만든 초안을 다시 회사 양식에 맞춰야 한다.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만든 결과물을 취합해야 한다. AI가 그럴듯하게 틀린 말을 쓰기 때문에 검토자는 더 긴장한다. 회사 자료를 어디까지 넣어도 되는지 불안하다. 기존 결재와 승인 절차는 그대로라 전체 리드타임은 크게 줄지 않는다. 오히려 AI로 더 많은 초안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검토해야 할 양만 늘어난다.

이것이 트럭을 100미터마다 세운 회사다. AI는 좋은 기술이다. 그러나 사람 크기로 쪼개진 업무 안에 AI를 넣으면 AI는 과하거나 어색하거나 위험해진다. AX는 직원들이 AI를 더 잘 쓰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AX는 AI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회사의 업무 단위와 책임 구조와 사업 범위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