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상자를 보내는 가상의 회사가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상자를 들고 달려서 배송한다. 어느 날 이 회사에 트럭이 들어온다. 상자를 옮기는 방법이 바뀌면 그 일을 해 온 직원들의 하루 업무와 회사의 앞날도 바뀔 수 있다. 이 수업은 한 학기 동안 이 사례를 단계별로 다루면서 사람의 능력, 일하는 방식,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1. 달리기 실력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회사
상자가 들어오면 첫 번째 직원이 출발한다. 첫 번째 직원은 자기 구간을 달린 뒤 상자를 다음 직원에게 넘긴다. 다음 직원도 자기 구간을 달린다. 상자는 이렇게 여러 직원을 거쳐 광화문에 도착한다. 회사는 오랫동안 이 이어달리기 방식으로 일해 왔다. 그래서 직원들은 누구를 어느 구간에 배치할지, 어디에서 상자를 넘길지, 비가 오면 어느 골목을 피할지 알고 있다. 새 직원은 선배 뒤를 따라 달리며 일을 배운다. 회사의 업무 방법은 문서보다 직원들이 오래 반복해서 일하며 익힌 기술과 습관으로 전해진다.
이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빨리 달리고 상자를 정확하게 넘겨야 한다. 가장 빠른 직원은 자기 기록을 자랑스러워한다. 오래 일한 직원은 신입이 상자를 놓치려는 순간을 미리 알아차리고 먼저 도와준다. 그래서 동료들은 이 직원에게 자주 도움을 청한다. 이 회사에서 달리기 실력은 배송을 해내는 능력이면서, 직원이 회사에서 자기 역할을 인정받는 근거다. 직원들은 하루 일을 마치면 오늘도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했다고 느낀다.
고객의 관심은 직원의 달리기 기록과 다른 데 있다. 고객은 상자가 약속한 시간에 손상 없이 도착하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직원의 달리기 기록과 고객의 만족은 함께 오르내렸다. 직원이 빨리 달려야 상자도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자 회사 사람들은 달리기를 잘하는 것과 배송을 잘하는 것을 같은 일로 여기게 되었다. 업무를 나누는 방법, 직원을 평가하는 기준, ‘일을 잘한다’는 말의 뜻이 모두 달리기 실력을 기준으로 정해졌고, 그 방식이 굳어졌다.
2. 트럭 도입 후에도 유지된 구간별 인계
직원들은 트럭 적재함의 크기에 놀란다. 여러 사람이 번갈아 들고 옮기던 상자를 트럭에는 한 번에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은 이제 덜 뛰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직원은 달리기를 가장 잘하던 자신이 앞으로 무엇으로 인정받을지 걱정한다. 같은 트럭을 보고 어떤 사람은 부담이 줄었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자기 역할이 줄어들까 걱정한다. 직원들은 몸이 덜 힘들어진다는 기쁨과 오래 익힌 실력이 덜 중요해질 수 있다는 불안을 함께 느낀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트럭을 나누어 준다. 하지만 업무 구간은 당분간 기존대로 유지한다. 직원은 각자 자기 구간을 운전하고, 구간 경계에 도착하면 상자를 다음 트럭으로 옮겨 싣는다. 도로를 달리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상자를 싣고 내리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은 그대로 남아 있다. 빨리 도착한 직원은 다음 차량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직원이 트럭에 타고 내리는 일도 새로 생겼다. 회사는 트럭 도입의 효과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고객이 상자를 받는 시각을 재면, 구간별 운전 기록만 볼 때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AI를 쓰는 부서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AI로 보고서 초안은 빨리 만들지만, 직원은 같은 자료를 다른 양식에 다시 입력하고 결재를 기다린다. 다음 부서는 내용을 다시 정리한다. 그래서 초안을 만드는 시간과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따로 재야 한다. 실제 사례를 배송 회사 사례와 비교할 때에는 세 가지를 묻는다. 어느 작업이 빨라졌는지, 누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최종 결과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다. 이 세 가지에 답하려면 도구를 쓴 사람의 경험과 업무 전체의 기록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3. 트럭 위원회가 정하는 규칙과 그 목적
트럭이 늘어나자 회사는 트럭 위원회를 만든다. 위원회는 운전 자격을 정하고, 주차 장소를 찾고,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어떤 책임을 질지 정해야 한다. 상자를 들고 달릴 때와 트럭을 운전할 때는 생길 수 있는 사고의 크기와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원들도 기준을 원한다.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위원회가 현장 직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규칙을 만들면, 직원들은 사고 걱정을 덜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위원회의 결정을 보면 회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위원회는 배송을 안전하게 하려고 상자를 싣는 기준과 운행 기준을 바꿀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구간과 기존의 승인 권한을 유지하려고 매번 도장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두 규칙은 겉으로 보면 비슷한 절차지만, 직원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달라진다. 그래서 규칙을 평가할 때는 규칙을 만든 목적, 규칙으로 줄어든 위험, 규칙 때문에 늘어난 대기 시간을 함께 따져야 한다. 기존 방식에서 쓸모 있던 절차가 트럭 배송에서는 시간만 늘릴 수 있다. 반대로 예전에는 생략하던 확인 절차가 트럭 배송에서는 꼭 필요해질 수도 있다.
직원들의 반응은 한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기준이 생겨서 안심하는 직원이 있고, 회의에서 자기 경험이 무시된다고 느끼는 직원도 있다. 관리자는 사고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승인 없이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낯설어한다. 각 사람의 반응에는 생계, 책임, 권한, 인정에 관한 걱정이 섞여 있다. 그래서 트럭의 성능만 설명해서는 직원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 어떤 부담을 떠안는지, 누가 결정에 참여하는지 물어보면, 같은 변화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4. 배송 경로 재설계
한 직원이 상자가 이동하는 경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본다. 그리고 상자를 왜 여러 번 내렸다가 다시 싣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 직원은 출발지에서 한 번 실은 상자를 한 트럭으로 목적지까지 옮기자고 제안한다. 회사가 오래 유지해 온 구간 나누기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지금까지는 자기 구간을 빨리 끝내는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회사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걸린 시간과 배송의 정확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직원마다 맡은 구간의 기록을 더하는 방식으로는 새 업무의 성과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는 상자를 한 번에 모아 싣고, 도착지에서 내리는 순서를 정하고, 경로와 고객과 약속한 배송 조건을 함께 조정해 본다. 이렇게 하려면 운전하는 사람, 상자를 실을 준비를 하는 사람, 고객의 사정에 맞춰 경로를 바꾸는 사람이 필요하다. 골목을 잘 알던 직원의 경험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처리할 때 쓸모가 있다. 관리자는 속도와 함께 지연, 비용, 안전도 점검한다. 업무를 나누는 기준이 바뀌었으므로 누가 무엇을 결정할지도 다시 정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책임지는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회사가 새로 정해야 할 문제다.
직원마다 새 역할을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교육받을 기회도 다를 수 있다. 직원이 더 어려운 판단을 맡았는데 권한과 보상이 그대로라면, 직원은 부담을 느낀다. 자신이 오래 쌓은 경험 가운데 무엇을 새 업무에 쓸 수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직원도 있다. 회사가 업무 흐름을 바꾸는 동안 직원들은 자기 경력을 다시 평가한다. 직원들은 자신이 잘하던 일이 새 업무에서도 쓸모가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래서 회사는 새 조직도를 만들 때 학습 시간, 직무 전환 지원, 평가 기준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5. 전국 배송과 회사의 사업 범위
트럭으로 더 많은 상자를 더 먼 곳까지 보낼 수 있게 되자, 회사는 배송 지역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 다른 도시로도 배송할 수 있는지 따져 본다. 전국 배송을 하려면 상자를 모으고 나누는 물류센터가 필요하다. 여러 차량의 위치와 운행 상황을 확인하는 관제센터도 검토해야 한다. 지연과 사고에 대응하는 방법, 새 고객을 찾는 방법, 협력 업체와 일하는 방식도 정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회사의 관심은 트럭 한 대를 잘 운전하는 문제에서 여러 지역의 배송 약속을 정하고 지키는 문제로 옮겨 간다.
‘회사 전체의 미션을 다시 정한다’는 말은 이 단계에서 구체적인 결정을 뜻한다. 회사는 누구의 상자를 어디까지 보낼지, 어떤 배송은 직접 맡고 어떤 배송은 협력 회사에 연결할지, 고객이 무엇에 돈을 낼지 정해야 한다. 이 결정에 따라 필요한 시설, 인력, 책임, 권한이 달라진다. 물류센터 운영과 관제처럼 새로운 전문 직무가 생길 수도 있다. 직원들도 자신의 역할을 설명할 새 표현을 찾는다. 달리기 실력으로 인정받던 직원이 배송 계획을 세우는 일을 새로 배워 맡을 수도 있다.
회사는 전국 배송 외에 다른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서 배송의 신뢰도를 더 높이는 방안도 있고, 다른 회사의 배송망에 참여하는 방안도 있다. 어느 방안을 고르든 수요, 비용, 안전, 노동 조건을 따져 봐야 한다. 직원의 앞날도 어느 방안을 고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 규모가 커질 때 새 역할을 맡고 싶은 직원도 있고, 익숙한 지역의 고객을 더 잘 챙기고 싶은 직원도 있다.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는 이런 선택과 직원들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6. 배송 성과와 직원이 실제로 배운 능력
트럭을 운전한 직원은 전보다 많은 상자를 더 먼 곳까지 보냈다. 이 직원이 새로 할 수 있게 된 일은 항목별로 따져 봐야 한다. 이 직원은 운전, 상자 싣기, 돌발 상황 대응 능력을 새로 익혔을 수 있다. 동시에 회사가 마련한 차량과 경로의 도움도 받았다. 달리기 실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이 직원의 배송 성과에는 직원이 배운 것, 도구의 성능, 회사의 지원이 함께 섞여 있다. 직원이 무엇을 배웠는지 알려면 완료된 배송 기록과 직원이 직접 내린 판단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
AI로 보고서를 완성한 경우에도 확인할 점이 여러 가지다. 사용자가 보고서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지, 틀린 근거를 찾아 고칠 수 있는지, 다른 자료를 받아도 알맞은 기준을 세울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용자는 초안 작성을 도구에 맡기는 동안 질문을 정하고, 자료를 고르고, 결과를 검토하는 능력을 길렀을 수 있다. 반대로 중요한 판단까지 도구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단계별로 확인하면, 사람이 익힌 능력과 도구에 의존한 부분을 점차 구분할 수 있다.
AI를 업무에 쓸 때에는 트럭 운행과 다른 종류의 위험도 검토해야 한다. 생성형 AI의 답변에는 오류나 근거 없는 내용이 섞일 수 있다.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에이전트에게 시스템 접근 권한을 주면, 에이전트의 잘못된 판단이 시스템의 실제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수업은 배송 회사 사례로 업무 변화에 관한 질문을 만들고, AI의 정확성, 실행 권한, 확인 절차와 복구 절차는 실제 자료로 따로 검토한다. 배송 회사 비유는 업무 변화를 이해하는 데 쓰고, 기술의 성능은 실제 자료로 확인한다는 뜻이다.
1교시 마무리 · 트럭을 믿는 정도와 실제 확인을 구분하자
배송량이 늘어난 직원이 자신감을 얻었더라도 무엇을 직접 판단했는지는 따로 살펴봐야 한다. 회사가 확인할 시간을 줄였다면 점검 생략을 직원의 태도만으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2교시에는 이 가상 회사에서 계속 분석할 문제를 하나 고르고, 확신과 확인 행동, 결과를 나누어 최초 사례 기록을 작성한다. 학생은 이 기록에 근거와 수정 내용을 더하며 기말 설계서까지 이어 간다.
3교시의 배정 논문은 Lee et al. (2025)의 생성형 AI와 비판적 사고에 관한 설문 연구 한 편이다. 지식노동자가 보고한 확신과 노력의 관계를 읽고, 2교시에 정한 질문이 실제로 어떤 자료를 요구하는지 비교한다. 읽은 뒤에는 ‘확인 노력이 줄었다’는 응답을 ‘능력이 낮아졌다’는 판단으로 연결한 부분을 고치고, 그 판단에 필요한 추가 관찰을 설계서에 적는다.